Ⅳ. 디지털방송의 공익성 구현을 위한 정책방향
디지털시대에도 방송의 공익성은 여전히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기본 덕목이다. 그렇지만 공익성을 어떻게 개념화하고 어떠한 정책으로 실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디지털화가 이루어지면 하나의 스펙트럼에서 5∼6개의 디지털채널을 사용할 수 있으므로 방송의 공익성 개념에 대한 근거를 전파의 희소성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소비자주권주의로 파악하여야 한다는 시장주의자들과 디지털시대에서도 숙의의 필요조건인 의견의 다양성이 보장될 수 있도록 내용규제가 지속되어야 한다는 숙의민주주의자들간의 대립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디지털TV방송사업자들의 공익구현 의무를 검토한 대통령 자문위원회 보고서(PIAC 보고서)는 다양한 정책들을 거론하고 있다. 디지털방송으로 완전히 전환되기 이전까지 아날로그방송과 디지털방송을 병행하여 운영하는 방송사업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의무를 부여할 것을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권고사항은 향후 디지털방송을 도입하는 다른 국가들에게도 정책수립의 준거가 될 것이다.7)
첫째, FCC가 디지털방송사업자들에게 정기적으로 공익적 프로그램의 방영기록과 공익실현을 위해 활동했다는 증거를 제출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여기서 공익적 프로그램이란 시사토론프로그램, 어린이프로그램, 교육프로그램, 지역프로그램, 장애인을 위한 자막방송, 소외계층을 위한 프로그램 등을 포함한다. 그리고 지역사회 단체나 지역의 공중은 이러한 보고서에 쉽게 접근하여 그 내용을 검토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보고서에 기초하여 공익활동의 정도를 계량화할 수 있는 세부적인 잣대를 마련할 것인가, 그리고 마련한다면 평가항목에 어떤 내용을 포함시킬 것인가에 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많다. 또한 자문위원회 보고서는 방송인들이 디지털시대에 적합한 윤리강령을 채택하여 공익성 실현의 의지를 천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제안을 제시하고 있다.
둘째, 의회는 디지털방송이 공익적 가치가 높은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제작하기 위한 여건을 제공하기 위해 신용기금을 조성하도록 해야 한다. 디지털시대에서는 프로그램 제작비가 많이 들며 디지털방송으로의 전환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디지털로의 전환 이후 늘어난 채널 가운데 하나를 비상업적 교육전문채널로 만들어야 하며 국가가 이를 위해 충분히 지원해 주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기금을 조성하는 방안은 다각적으로 모색해 볼 수 있으며, 하나의 대안으로 반납예정인 아날로그채널의 판매대금을 활용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또한 데이터방송을 운영하는 디지털사업자는 지역사회의 학교, 도서관, 비영리 기관, 지방정부 등을 대신하여 공공정보를 제공하는 공익적 서비스를 실시할 수 있다.
셋째, 디지털방송의 다중방송서비스 특성을 공익프로그램의 방영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 디지털전환 이후 늘어난 채널들 가운데 하나를 비영리 공익적 프로그램 채널로 사용할 수 있다. 자문위원회는 방송사업자에게 이 채널을 통해 지역사회의 요구를 반영한 공익프로그램을 편성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또한 자문위원회는 디지털방송사업자가공익채널 운영을 거부할 경우 시장가격보다 싼 가격으로 공익방송 운영을 희망하는 자에게 임대하여 주거나 정당, 지역사회단체 혹은 선거 입후보자에게 무료로 방송시간을 할애하고 기술적 지원을 제공하도록 권하고 있다. 한편 자문위원회는 방송사업자가 공익 목적의 임대나 공익프로그램의 무료방송을 거부할 경우, 즉 어떠한 공익적 책무도 지기를 거부하고 디지털 채널을 상업적 목적으로만 사용하기를 희망할 경우, 그에 상응하는 요금을 지불하도록 할 것도 정책방안에 포함시키고 있다.
다중방송의 실현으로 늘어난 채널 가운데 하나를 공익채널로 운영할 것을 강제하는 대신에 방송사업자로 하여금 다양한 선택을 허용하는 조치는 방송의 공익적 수탁자 모델에서 탈피하여 방송사업자의 영리추구 자유를 인정하는 탈규제정책을 반영하고 있다. 탈규제 옹호론자들은 이런 영리추구를 내세운 방송사업자들이 시청자의 관심과 욕구를 최대한 충족시킬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결국 시청자의 복지를 향상시킬 것이라는 전망에서 정책적 기조의 정당성을 찾는다.
넷째, 디지털방송사업자는 정치담론의 질적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의회가 선거운동 재정에 관해 개혁적 조치를 취할 때 방송사업자들도 개혁과정에서 일익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방송사가선거방송시간을 판매할 때 의무적으로 최저요금률을 적용하는 대신에 시장가격으로 방송시간을 판매하고 추가로 무료방송시간을 제공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또 다른 대안으로는 정당이나 후보자가 사용할 방송시간을 저장해 놓는 방송은행의 설립인데, 이 은행의 재정은 방송사가 다중방송 운영의 대가로 지불하는 전파요금이나 방송사가 선거개혁에 동참한다는 의미에서 의무적으로 내놓는 방송시간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정치담론의 향상을 위한 또 다른 정책대안으로 방송사가 선거전 30일 동안 매일 5분씩 주요 후보자에게 방송시간을 할당하도록 하는 것이다. 방송프로그램의 포맷은 방송사가 자율적으로 정하되 시간은 오후 5시에서 오후 11시 반까지로 정해 보다 많은 시청자가 시청할 수 있도록 배려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FCC는 방송사가 모든 유형의 입후보자들에게 일률적으로 방송시간 판매를 거부하는 행위를 금지시켜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방송사가 모든 선거의 입후보자들에게 방송시간을 할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일정 숫자의 후보자에게 방송매체를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섯째, 디지털방송사업자들은 재난이 닥쳤을 때, 재난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예보하는 공익적 책임을 완수해야 한다. 디지털방송이 도입되면 시각 및 청각 장애인들에게도 재난을 경고할 수 있는 메시지 전달방법을 개발할 수 있으며 특정한 위험지역에 한정하여 재난예보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재난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디지털방송은 재해대책본부와 긴밀히 협조하여 가장 효율적인 정보 제공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또한 디지털텔레비전 수상기가 재난방송에 적합한 기능을 갖추도록 수상기 제조업자를 규정하는 법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여섯째, 디지털방송은 장애인들의 편의를 최대한으로 고려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특히 공익관련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자막방송을 의무화하고, 음성 및 영상 정보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거나 디지털채널의 부가 및 보조 서비스기능을 충분히 이용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장애인을 대상으로 영상서비스, 컴퓨터소프트웨어제공서비스, 상호작용서비스, 데이터전송서비스를 확대할 경우 장애인의 교육, 취업 및 여가선용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일곱째, 디지털방송은 다양성 증진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디지털방송을 통해 지역사회의 다양한 상업적 이해와 정치적 견해를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디지털방송은 협송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므로 사회에서 소외된 소수민족 집단이나 빈곤계층의 의견을 반영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함으로써 의견의 다양성을 증진시킬 수 있다. 디지털방송에서 의견의 다양성을 증진시키는 방안으로 PIAC 보고서는 독립제작자에 대해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방송사 인력충원시 여성이나 소수민족 출신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디지털방송의 공익성 실현을 위한 정책방향에는 국가별로 큰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영국에서도 산업의 보호육성이라는 목표와 공익성의 강화라는 목표 사이에서 타협점을 모색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한편에서는 소비자주권주의를 옹호하는 정책방향을 제시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공익성의 실현을 위해 보편적 서비스, 다원성과다양성, 서비스의 질적 향상, 그리고 시민의 이익보호 등을 내세우고 있다. 독일의 경우에도 디지털방송의 공익성을 실현하는 기본 전제를 방송을 통한 의견의 다양성 증진에서 찾고 있으며, 이를 위해서 프로그램 내용이 시청자권익을 옹호하고 채널에 대한 접근권이 열려 있도록 하는 정책을 채택하고 있다.8)
1. 유료방송제도의도입과 공익의무 면제정책
아날로그방송에서 디지털방송으로의 전환은 방송환경을 안정적이고 예측적인 상태에서 불안정하고 가변적인 상태로 바꾸어 놓고 있다. 방송사업자들은 하나의 채널만을 운영하던 아날로그시대와는 달리 여러 개의 채널 가운데 몇 개의 채널을 운영해야 할지 선택해야 하므로, 여러 가지 유형의 방송사업자들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여전히 하나의 채널만을 운영하는 사업자, 여러 개의 채널을 운영하는 사업자 그리고 여러 개의 채널과 아울러 상호작용적 서비스와 데이터전송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사업자들이 공존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일일방송시간도 사업자들의 선택결과에 따라 차별성을 띠게 될 것이다.
여기서 파생되는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공익성 실현의 책임을 다양한 유형의 사업자들에게 일률적으로 부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채널을 하나만 운영하는 사업자와 채널을 여러 개 운영하는 사업자에게 동일한 공익실현 의무조항을 적용할 수 있는가의 문제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일부 정책입안자들은 지금까지의 일률적 내용규제와는 다른 접근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여기서는 의무적 유료방송 모델, pay-or-play 모델 그리고 pay plus access 모델에 관해 논의하기로 한다.9)
의무적 유료방송 모델(mandatory pay model)은 모든 디지털채널사업자들에게 전파요금을 부과하여 기금을 만들고, 그 기금을 활용하여 프로그램의 공익성을 유지하도록 하자는 정책방안이다. 전파요금 모델이라고 불리는 유료방송 모델은 방송사 수입 가운데 일정비율을 요금으로 징수하여 조성한 신탁기금으로 공익적 프로그램의 제작을 지원하거나 공익채널의 재정을 지원하자는 것이다. 이 모델은 전파의 희소성 문제가 해결된 디지털시대에 걸맞는 공익성 실현방안으로 제안되었는데 경쟁의 심화로 인해 상업방송사에게 수탁자 모델에 입각한 내용규제정책을 적용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정책적 타당성의 근거로 삼고 있다.
유료방송 모델에 유연성을 가한 것이 바로 pay-or-play 모델이다. 방송사업자에게 전파요금을 지불함으로써 공익의무를 면제받을 것인지, 아니면 기존의 수탁자 모델이 요구하는 공익적 규제를 받아들인 것인지를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다. 일견 방송사업자에게 선택의 자유를 부여하여 자율적 판단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방안인 듯이 보인다. 하지만 이 안은 시장자유주의자들의 이해를 가장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정책모델임을 알 수 있다. 지불능력이 있는 자에게만 공익의무를 면제받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으로서 이는 마치 지불능력이 있는 자에게 군입대의 의무를, 지불능력이 있는 제조업체에게 환경보호 의무를 면제해 주는 정책과 발상을 공유하고 있다. 공익의무까지도 상품화하여 시장에서의 거래품목으로 전환시키는 시장주의적 발상에 기초한 이 모델은 채널간의 격차를 증폭시킬 것이다. 결국 전파요금을 지불한 방송사업자들은 공익적 프로그램의 편성의무에서 벗어나 시청률을 끌어올릴 수 있는 경쟁력있는 프로그램 제작에만 전력투구할 수 있게 된다. 이럴 경우 대부분의 시청자들이 이러한 상업적 채널에 몰릴 것이며 신탁기금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공익채널은 주변화될 것이다.
pay plus access 모델은 pay-or-play 모델과 동일한 틀을 유지하지만 비교적 공익적 의무를 적게 면제해 주는 방안이라고 볼 수 있다. 지불의사가 있는 방송사업자에게 일정시간 동안 정치인에게 채널접근권을 허용하거나 채널을 대여해 주는 것 이외의 공익의무를 면제해 줄 것을 규정하는 정책방안이다. 특히 후보자들의 디지털방송은 시청률이 낮은 공익채널에서 보다는 시청률이 높은 상업채널에서 더 큰 효과를 낼 것이므로 이 방안은 상업채널로 하여금 다양한 정견을 공표하도록 하고 있다. pay plus access 모델은 의무적 유료방송 모델과 마찬가지로 공익채널을 위한 신탁기금을 조성할 수 있으며, 이와 동시에 정치인들에게 유료임대를 보장하거나 무료이용을 규정함으로써 시청자들이 상업방송을 통해서도 공공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선거운동 기간에 후보자에게 무료접근권을 부여하여 후보자들간의 토론을 방영한다면 이를 통해 정치적 쟁점에 관해 식견을 갖춘 시청자들이 늘어나 민주주의가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방송사업자는 전파요금을 지불했음에도 불구하고 채널접근권 보장이라는 공익서비스의 의무를 부과하는 것을 과도한 부담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므로 실효성을 거둘 수 있는지는 지켜보아야 할 일이다.
2. 공익 채널과 공론권(public sphere)의 형성
방송의 디지털화로 인해 채널의 수가 늘어난 가운데 일부 채널들에게 공익성 실현의 의무를 면제해 주는 대신 요금을 지불하도록 하고, 이를 통하여 조성한 기금으로 별도의 공익채널을 운영하도록 지원하는 방안은 새로운 시도는 아니다. 케이블방송과 위성방송의 도입 상황에서도 공공접근(public access)채널과 교육채널의 운영방안이 공익성 구현의 방편으로 논의되었으며, 미국에서는 지역 케이블방송사들의 재정적 지원아래 공공접근채널이 운영되고 있다. 물론 방송채널을 상업적으로 이용하여 영리를 추구하고자 하는 사업자들은 공공접근 채널을 지원하도록 하는 규정을 환영하지 않는다.
그러나 채널의 수가 거의 무제한으로 늘어나는 상황에서는 소수의 공익채널을 허용한다고 하더라도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상당수의 채널을 확보할 수 있으므로 공익성 실현의 의무를 면제받는 대신 기금조성용 요금을 지불하는 방식에 더이상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상업적 채널은 철저하게 시장논리를 따라 시청자들의 욕구를 반영하고, 공익의 의무는 공익채널에게 맡기는 정책을 시장주의자들이 옹호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시청자들이 무수히 많은 상업적 채널들과 소수의 공익채널들 가운데 어떤 채널을 선택할 것인지는 그들의 현명한 선택에 맡기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디지털시대에 공익전용채널을 두는 방안은 소비자주권주의 정책철학에도 부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공공문제에 관해 관심을 가진 시청자들은 공익채널을 시청함으로써 다양한 의견들을 접할 수 있을 것이며, 오락물을 원하는 시청자는 오락채널을 시청하여 즐거움을 얻을 수 있고, 쇼핑을 원하는 시청자들은 홈쇼핑채널을 통해 편리한 소비생활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즉, 모든 시청자들이 그들의 선택을 통해 욕구를 효율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는 없는가? 모든 시청자들에게 선택의 자유를 부여했을 때 과연 얼마나 많은 시청자들이 오락성이나 재미와는 거리가 먼 공익채널을 선택할 것인가? 소수의 시청자들만이 공익채널을 시청할 것이며 대다수의 시청자들은 자신들의 관심사와 취향을 가장 잘 반영하는 채널 몇 개를 고정적으로 시청할 가능성이 크다. 디지털시대로 접어들면서 방송시청도 개인화(personalization) 혹은 맞춤화(customization)의 방향으로 전환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해진다.10) 개인이 보고 싶은 것을 마음껏 볼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다는 점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방송에 공익성을 요구하는 근거인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서 위에서 언급한 소비자주권의 최적화가 바람직한 방안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소수의 채널만이 존재했던 아날로그시대와는 달리 다수의 채널을 선택하는 상황에서는 자신이 별로 관심을 두고 있지 않는 문제나 자신의 의견과 반대되는 견해를 접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 결과로서 민주주의의 작동을 훼손하는 두 가지 중요한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하나는 방송시청을 통해 자신이 원하지는 않지만 우연히 접할 수 있는 정보나 견해에 대한 접근이 차단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맞춤채널의 이용으로 말미암아 점차 파편화된 시청자들은 공통의 화제를 발견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공익적 프로그램을 방영해야 한다는 의무를 면제받는 대신 전파요금을 지불하게 하는 방안(pay instead of play)은 공익채널을 유지할 수 있는 재정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에는 기여할지 모르지만 방송을 통해 공공포럼(public forum) 혹은 공론권(public sphere)을 형성하는 데에는 크게 기여하지 못한다고 하겠다. 특히 공익채널보다는 자신들이 즐겨보는 몇 개의 상업채널에 한정시키는 시청행위가 확산된다면 공공정보에 대한 우연한 접근이 어렵고 시청자들간의 공통화제를 찾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공공문제에 관한 정보가 부족하고 공동의 관심사가 없을 때 의미있는 토론이나 숙의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디지털방송이 공론권의 역할을 수행하려면 방송의 공익성 의무를 공익채널에게만 맡기는 pay-or-play 모델보다는 시청률이 높은 상업채널에서도 공익프로그램을 방영하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상업채널로 하여금 선거 후보자가 방송을 이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는 pay plus access 모델채택을 고려해 볼 만하다. 물론 상업채널이 자율적으로 후보자를 출연시키는 프로그램을 방영한다면 좋겠지만, 상업적 이유로 그러한 프로그램을 편성하지 않을 경우에는 이를 강제할 수 있는 조항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선거관련 공익프로그램의 ‘의무전송’(must carry)을 의미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