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적 논의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공익'은 정책의 결정 과정에서 하나의 주어진 개념이라기 보다는 정책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재정의되고 재해석되는 개념이며, 과정에 참여하는 각 참여자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달리 정의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정책 결정 과정은 결국 참여자간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통하여 이러한 '공익' 정의에 대한 최종적인 합의에 도달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정책 결정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참여가간의 상호작용 양상에 대한 예측을 가능하게 하는 이들간의 역학관계에 있는 분석이 이루어져야 한다. 물론 이러한 역학관계 속에는 겉으로 드러난 역학관계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을 시도해 봄으로써, 정책 결정 과정을 설명할 수 있는 논리를 부분적으로나마 발견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우리나라 방송정책 과정에서의 이러한 역학관계를 다음과 같이 구성해 보았다.
<그림 1>이 복잡한 정책 과정의 모두를 드러내 보여줄 수 없을 것이다. 정책 과정이 항상 참여자간의 이해관계의 대립을 통해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며, 그 배경에는 정책안 자체와는 무관한 정치적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제206회 임시국회에서 방송법안이 통과되지 못한 것과 관련해서도 자사이익을 추구하는 KBS의 로비설, 차기 총선을 현 방송체제에서 치르겠다는 여당의 음모설 등 정책실패의 배경이 되는 블랙박스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들이 나오고 있다.28) 이 그림에서는 이러한 블랙박스 부분은 배제한 채 참여자들이 서로 어떠한 것을 주고 받는 관계에 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방송정책의 상호작용 체계를 나타내고자 하였다.
그림에 나타난 참여자 집단은 각각 정책 결정 과정에서 갈등적인 목표를 추구하게 된다. 즉 정부 부처는 자부서의 권한 확대와 위치 확립을, 규제기구는 방송 규제를, 의회는 정치적 목표(재당선)를, 방송사는 이윤 확대, 경쟁력 확대, 자사위상 확립을, 방송노조는 방송인의 권익 향상 및 시청자 이익 대변을, 그리고 시민단체는 권력 견제 및 시청자 이익 대변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 갈등은 이들의 상호작용 체계와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는데, 각 집단은 이러한 이해를 최대한 만족시킬 수 있는 전략을 선택하게 된다. 결국 정책 과정은 이러한 상호작용 체계 내에서 각자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서, 서로 경쟁하고 협상해나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참여자간의 힘의 관계는 상황이나 이슈에 따라서 매우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속성을 지니기 때문에, 이를 실제로 관찰하고 검증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다만 본 연구에서 관심을 갖는 것은 이러한 참여자들의 역학관계 속에서 '공익'이라는 상징적 개념이 각 집단의 이해를 극대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어 궁극적인 정책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정책 결정 과정을 보다 정확하게 분석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상징적 해석의 갈등 차원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보며,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방송정책과정에 참여하는 대부분의 참여자들의 정책 논리의 근간이 되는 '공익' 개념에 대한 인식 유형을 분류해 봄으로써 근본적인 갈등의 양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다.
실제로 방송법 입안 과정에서의 여러 논의들을 살펴보면, 근본적으로 각 참여 집단이 공통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공익적 가치가 존재함을 알 수 있다. 방송의 정치적 독립, 프로그램 다양성 실현, 시청자 주권 보호 등의 가치가 그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영역을 공익 개념에 대한 '동의 영역'이라고 규정하였다.
한편 각 참여 집단의 개별적 이해와 관련하여 각기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갈등 영역' 또한 존재한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동의 영역'에 해당되는 공익이 주로 상징적이고 가치 지향적인 성격을 띠는 경향이 있는 반면, '갈등 영역'에 해당되는 공익은 구체적이고 정책 지향적인 성격을 띤다는 사실이다. 정치 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가치 자체에는 각 참여자 집단이 일관적으로 동의하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고려해야 할 가치로서의 '공익'에 있어서는 집단별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은 그 예라 할 수 있다. 즉 시청자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서 비교적 이타적인 공익을 추구한다고 가정되는 시민단체나 방송노조의 경우 방송의 독립성을 위해서 시청자 대표성을 갖춘 방송위원회가 방송 정책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게 된다.29) 이러한 예는 각 집단이 '방송의 정치적 독립'이라는 가치에는 동의하지만, 방송의 공적 규제 및 방송의 산업적 효율성이라는 각기 다른 가치에 다른 무게의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경우라 하겠다. 다시 말해서 '공익' 개념에 대한 갈등 영역은 주로 개별 참여자 집단의 이해관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가치 지향적인 개념으로서의 '공익'이기 보다는 개별 집단의 이해와 연관된 구체적인 '공익'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상징'으로서의 '공익'은 받아들이지만 특정 집단의 사적인 이해관계와 상반되는 것일 때에는 이를 '공익'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게 된다는 이러한 설명은 '공익'의 명목 기능을 입증해주는 것이다.
'공익'의 동의 영역과 갈등 영역은 상징적/구체적이라는 구분 이외에 이슈에 따라서도 달리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 이슈가 특정 집단의 이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는 '공익'에 대한 해석이 달리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즉 각 집단의 이익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경우에는 '공익'에 대한 정의에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어 갈등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대체적으로 동의하는 양상을 띠게 될 것이다.
결국 방송정책의 과정은 갈등 영역에서 각 참여자 집단이 서로 달리 인식하는 '공익' 개념이 참여자간의 복잡한 상호작용 시스템을 통과하여, 어느 정도 합의에 도달할 수 있는 하나의 구체적인 정책안으로 입안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의 <그림 2>는 이러한 정책 과정을 간단히 도형화한 것이다.
방송정책의 결정은 실질적인 입법권을 지닌 국회를 중심으로 하여 각 참여자 집단의 개별적인 이해관계를 수렴한 후, 일정한 정책 결정 과정을 통해서 이를 조절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위의 그림은 이러한 정책 과정을 '공익' 개념을 중심으로 설명한 것이다.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동의 영역'에 해당되는 상징적, 개념적, 당위적인 공익에 대해서는 모든 정책 참여자가 일반적인 합의를 이루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개별 참여자 집단의 복잡한 이해가 관련된 좀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문제와 연관될 경우 각 참여자 집단은 그들이 추구하는 이해와 일치하는 방향으로 '공익' 개념을 인식하게 되는데, 이는 곧 공익의 '갈등 영역'에 해당된다. 그리고 이러한 구체적인고 현실적인 정책 갈등은 참여자간의 힘의 역학관계, 정치적 이해관계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이른바 블랙박스의 과정을 거쳐서 특정 형태의 정책 입안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본 연구는 이러한 이론적 틀을 바탕으로 하여, 실제적으로 방송정책 참여자 집단의 구성원들 각자가 인식하고 있는 공익 개념에 대한 동의 영역과 갈등 영역에 대해서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분석을 시도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