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et DATA_HOME $env(UNIWEB_DOC_ROOT) source $DATA_HOME/init.appl ] 방송정책 참여자들이 인식하는 '공익' 개념의 유형 연구

  Ⅲ. 이론적 배경

'공익'의 동의 영역과 갈등 영역에 대한 분석에 앞서 다음에서는 정책 결정의 과정에서 '공익'이라는 상징적 개념이 어떻게 가능하는 지에 관하여 간단히 언급해 보도록 하겠다. 이를 위하여 다음에서는 '공익' 개념 자체가 지니는 모호성과 유동성, 정책 과정에서의 명목적 기능, 정책 결정 과정의 매카니즘에 관한 기존 논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1. 공익 개념의 유동성 : 방송정책 참여자의 공익에 대한 인식 차이

공익 개념은 사회문화적 배경과 시대적 철학을 반영하기 때문에 시대와 사회에 따라 다른 개념으로 사용되는 특성을 지니며, 그에 따라 학자마다 공익 개념을 여러 유형으로 나누어 분류하려는 시도가 있어왔다. Held(1970)의 경우는 공익에 대한 이론을 일원론, 공동 이익론, 우세론으로 나누어 설명한 바 있으며,6) 현경보는 공익에 대한 시각을 규범적 이익이론, 다수 이익이론, 공동 이익이론의 세 가지로 분류하여 설명한 바 있다.7)

이러한 분류는 근본적으로 공익을 절대선으로 보는가, 공동선으로 보는가 혹은 현실의 구체적인 실체로 보는가 하는 시각의 차이를 드러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절대적인 가치나 선의 존재 자체를 정의, 구분하기가 힘들어진 오늘날에는 공익을 선험적이거나 전체적으로 주어지는 것으로 보기 보다는 현실적, 다원적으로 절충된 사익을 조정, 타협하여 만들어간다는 과정적 측면에서 파악하는 입장이 늘어나고 있다.8) 실제로 오늘날 공공정책, 정치적 행위, 사회적 가치 등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공익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공익을 과정적 측면에서 파악하는 입장은 설득력을 지닌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공익이 정책 결정 등의 과정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자주 등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실체가 무엇인가에 관한 구체적이고 합의된 정의는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렇듯 공익성의 실체를 파악하는데 실패한 데 대하여 조은기(1994)는 모호한 공익의 유용성과 방송의 이중 시장적 성격을 꼽는다.9) 그의 이러한 주장은 정부의 명목 공익이 허구 공익이거나 실질 공이과 괴리가 클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Hobbes와 인식을 같이 하는 것이다.10)

본 연구에서는 '공익'이라는 개념이 본질적으로 고정적인 것이 아니며 유동적이라는 입장에 동의한다. 또한 심리주의적 현실주의의 입장에서,11) 공익성은 정책 결정자의 가치 체계인 동시에 결정자의 의중에 있는 이익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본다. 또한 그 유동성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공익'이라는 가치를 절대적인 가치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정책의 결정 과정에서 이 개념이 각 참여자들의 이해관계를 정당화하는 기제로 어떻게 이용되고 있는가를 알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방송정책 과정에 참여하는 여러 참여 주체들이 각기 공익 개념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에 관해서는 일부 학자들이 관심을 기울인 바 있다. 특히 Krugman과 Reid(1980)는 FCC 정책 결정자들이 '공익'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가에 관심을 갖고 FCC 위원, 사무처 간부, 법률 자문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이를 분석한 바 있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이들 정책 결정자들은 공익이 '다양한 이해관계의 조화'를 의미하는 동시에,12) 다양한 이해관계를 지니는 여러 집단들에 의해서 상호 조정되고 발전해가는 과정이라고 밝히고 있다.

한편 미국 NAB 회장을 역임한 Fritts(1988)는, 방송에 있어서 '공익'이란 법이나 제도에 의해서 강제된 것이라기 보다는 방송이 생존하는 방식이라고 주장한다.14) 즉 방송사가 면허를 지속하고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공익에 봉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Richard 등(1988)도 FCC의 규제 이념이 목표 지향적인 '공익'에서 시장지향적인 개념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공익'은 더 이상 정부에 의해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방송사가 스스로 발견해 나가는 것이며, FCC 규제자에 의해 정의되는 이상적 개념이 아니라 시장의 힘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15)

전 CBS 사장인 Jankowski(1988) 역시 이들과 유사한 관점에서, 방송이 잘 운영되기 위해서는 먼저 공익에 봉사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방송사에 투자를 하는 투자자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은 방송사가 공익에 얼마나 적절히 대응하고 있는가라는 점이라고 지적하면서, 공익에 가장 잘 봉사할 때 더 많은 투자자들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16)

Sawyer(1988)는 이타적인 공익을 추구한다고 볼 수 있는 시민단체의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공익을 시청자의 이익(특히 소수 시청자의 이익), 즉 'higher goods'에 근접하는 이상적 공익으로 파악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그는 방송이 공익 임무와 상업적인 이익과의 조화를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방송사의 이기적인 관심에서 벗어나는 것이 공익에 더욱 잘 봉사하기 위한 열쇠가 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가 이야기하는 방송의 주요 임무는 교육 프로그램의 제공, 지역에 필요에 부응하고 다양한 요구와 관심을 반영함으로써 얻어질 수 있는 것이 된다.17)

한편 방송정책 참여자들의 인식 차이에 관한 분석을 시도한 국내 연구로는 윤재식(1995)과 이창현(1998)의 연구를 들 수 있다.

윤재식은 방송사, FCC, 시민단체 등 각 정책 참여자들의 방송정책 개념 인지에 대한 연구를 시도한 바 있다. 그는 특히 '공익'에 대한 평가와 관련한 분석에서, 탈규제/규제, 정보/오락, 수용자/방송사, 소유권 분산화/집중화, 프로그램 고급화/저질화, 선택폭 증가/감소, 접근권 확대/축소 등의 척도를 그 하위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방송사는 공익성이라는 용어가 방송사에 가까운 개념이라고 평가한 반면 방송위원회는 수용자에 가까운 개념이라고 평가하였으며, 정보통신부와 방송사는 공익성이 접근권의 축소를 유도하는 개념이라고 평가한 반면, 방송위원회는 접근권의 확대를 유도하는 개념이라고 평가한 것으로 분석되었다.18)

이창현은 방송정책 과정에서의 영향력자라고 판단되는 국회의원, 공보처 관료, 방송학 교수, 방송국 최고 경영자 등 4개 집단의 3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이들의 인식 유형을 '공익적 계도론'과 상업적 자율론'으로 분류하였다.19)

이들의 연구는 방송정책 과정에 참여하는 각 집단의 구성원들이 관련 개념 및 가치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에 관한 연구로서, 정책 과정에서 빚어지는 참여자간의 갈등의 근원을 어느 정도 밝혀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단순히 인식의 차이를 기술적으로 밝혀주거나 분석적으로 유형화하는데 그치고 있어서, 이들의 '공익' 개념에 대한 인식이 참여자 각각이 추구하는 이해와 어떠한 관련이 있으며 정책 갈등의 근원으로서 어떻게 기능하는가를 밝혀주지는 못하고 있다.

  2. 정책 결정 과정에서 참여자간의 역학관계

앞의 논의를 통해서 방송정책 과정에 참여하는 각 주체들은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공익'의 개념을 조금씩 다르게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음에서는 이러한 참여자들의 이해관계 및 입장의 차이가 정책 과정에서 어떻게 반영되며 어떠한 정책 결과를 이끌어내게 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정책 결정 과정에 관한 이론을 중심으로 이를 논의해 보도록 하겠다.

우선 다원주의적 관점에서는 정책의 결정 과정을 다양한 힘과 가치들이 상호 작용하는 가운데 궁극적으로 '공익'이라는 합의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파악한다. 이 때의 '공익'은 공리주의적인 공익으로서의 절대적 일원론적인 공익이 아닌, 비교적 균등한 힘을 지닌 다수의 참여자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공익이 된다. 즉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각 집단이 비교적 균등한 권력을 지니고 있으며 합리적인 선택을 추구한다는 가정 하에, 이들 각각이 추구하는 시익들이 공적인 협의, 조정의 과정을 거쳐서 궁극적으로 '공익'이라는 합의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다.20)

그러나 합리적 선택이론에 기반한 다원주의적 정책 결정 모델은 이러한 가정으로 인하여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비판을 받는다.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각 집단이 항상 합리적인 선택을 추구한다는 가정과 정책 과정에서 각 집단이 비교적 균등한 권력을 행사한다는 가정이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정책 과정에 참여하는 참여자들은 정보의 제한성 및 전략적 목적 등으로 인하여 합리적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서로 다른 성격과 크기를 가진 권력을 행사하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비판과 같은 맥락에서 Lindblom(1980)은 정책 결정의 과정이 다수 참여자에 의한 상호 작용적 통제의 과정인 동시에 권력에 작용(play of power)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정책 결정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권력 작용의 규칙, 통제, 행사방법, 참여자 등을 파악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21)

Stone(1988) 역시 정책 결정 과정이 현실적으로 여러 가지 모순을 내포할 수밖에 없음을 강조하면서, 그의 저서(Policy Paradox and Political Reason)를 통해서 우연모형(쓰레기통 모형)의 시각에서 이러한 모순에 대해 설명한다. 즉 정책은 근본적으로 정치적 논리에 의해서 형성되는 것이므로 객관적인 합리성의 논리에 의해서는 이해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정책 결정을 일정한 단계를 거쳐 해결되는 일련의 과정으로 파악하기 보다는, 사람의 행동양태를 규율하는 이념들을 정의하고, 분류의 범위를 정하고 기준을 정하기 위한 끊임없는 갈등의 산물로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22)

한편 정책 결정 과정을 하나의 정치 과정으로 파악하는 모델로는 관료정치모형을 들 수 있다. 이 모형에서는 정책을 다양한 행위자들의 타협과 협상의 결과이며, 전략목표 없이 국가적, 조직적, 개인적 목표에 따라 행동하는 다수의 정치적 인물들간에 이루어지는 정치적 행동의 결과라고 본다. 즉 정책은 정치적 게임의 산물로서 참여자들의 선호와 영향의 복합체라는 시각을 취하는 것이다.23) 따라서 관료정치 모형에서는 정책 과정에 참여하는 참여자는 누구인지, 그리고 그러한 참여자들 각각은 어떠한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정책 결정 과정에 어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정책의 경로나 게임의 규칙은 무엇인지 등을 분석하는데 관심을 갖는다. 즉 참여자와 그들의 지위, 이해관계, 영향력, 게임의 규칙, 게임의 진행 과정 등을 확인함으로써 정책 결정에 관한 설명과 예측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24)

결국 정책 결정 과정에 관한 이러한 제모델과 이론들이 함의하고 있는 바는, 정책 결정 과정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참여자들이 추구하는 이해와 이들간의 역학관계가 분석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Krasnow, Longley, Terry(1982) 등의 방송정책 결정 모델 역시 다원주의, 합리적 선택이론의 기본 가정을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보다 현실적인 문제로서 참여자들간의 권력관계에 관심을 기울인다. 이들은 Lindblom의 논의를 토대로 하여 정책 결정 과정에 관한 7개의 일반적인 명제를 소개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본 연구에서 주목할 만한 두 가지 명제에 대해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25)

하나는 참여자들이 정책의 결정 과정에서 각기 갈등적인 목표를 추구한다는 명제이다. 이들은 사례연구를 통해서 방송사는 이윤을, 시민단체나 법원은 다양한 서비스라는 사회적 목표를, FCC는 규제를, 의회는 정치적 목표나 재당선을 추구한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이들의 이러한 주장은 입법갈등 이론모형의 명제와 같은 맥락이고 할 수 있는데, 이 모형에서는 보상극대화 이론의 주장을 일반 공리로서 받아들인다. 즉 인간은 항상 자신의 이해를 최대화하기 위해서 노력하며, 기대가치가 가장 큰 행위를 선택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는고 가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정당은 득표극대화(당선 확률의 극대화), 관료는 소속부국 극대화(예산규모와 권한), 이익집단은 이익극대화, 기업은 이익과 매상고의 극대화를 꾀한다는 것이다.26)

이들이 제안한 또 다른 명제는 정책 과정에서 법적, 이데올로기적인 상징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선택의 자유', '공익' 등의 개념은 여러 가지 중복된 의미를 담고 있는 것들이어서, 이러한 개념들을 둘러싼 논쟁이 궁극적으로 정책의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한 방송정책 결정 모델을 통하여 방송정책이 정치적 과정의 결과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즉 방송정책은 다수 참여자들의 상호작용의 체계이며 그 과정에서 정치체계의 블랙박스의 작동 원리가 적용된다고 보는 것이다. 결국 이들은 몇 가지 방송정책 사례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정책 결정 시스템이 '공익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참여자들이 고른 목소리를 내면서 상호작용하고 다양한 정책 의제들이 논의되고 점증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할 것이라고 제안하고 있다.

한편 김해연(1992)은 이들의 논의 중에서 블랙박스 부분에 관심을 갖고, 이 부분이 결국 게임이론에서 이야기하는 전략적 게임의 과정이라고 보았다. Krasnow 등의 방송정책 결정 모델의 수정 가능성을 게임이론적 분석에서 찾아보자는 것인데, 참여자와 그들의 선호, 목표, 전략적 가능성, 게임의 규칙 등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정책 과정을 분석, 예측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제안인 것이다. 그녀는 특히 참여자의 행위선택은 보상극대화 행위라고 가정하고, 정책 문제의 해결은 참여자들이 다른 참여자들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자기 집단의 보상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어떻게 행동해야만 할지를 발견함으로써 얻어질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27)

정책 과정에 대한 이상의 연구들을 종합하여 볼 때, 정책 결정 모델을 통해서 정책 결과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참여자들이 추구하는 목표, 정책 가치에 대한 인식의 차이, 이해관계, 힘의 관계 등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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