Ⅵ.수평적 융합에 따른 공정경쟁 방안
1.망, 기업, 서비스의 상호융합에 따른 경쟁
망, 기업, 서비스 차원의 공정경쟁 방안에 기초하여 이들 두 분야 혹은 세 분야를 통괄하는 수준에서의 융합이 전개될 경우 이들간의 공정경쟁 방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양 사업자간의 경쟁은 주로 종합유선방송의 SO와 시내전화사업자간의 경쟁이라 할 수 있다. 현 단계에서 케이블TV사업자와 전화사업자간의 경쟁은 기본 인프라인 망을 기반으로 하여 시작된다. 그러나 케이블TV(SO)가 전송망을 소유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전화사업자와 새로운 서비스영역에서 경쟁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 경우 전화사업자는 망과 서비스를 수직적으로 통합하고 나아가 경쟁자인 케이블TV사업자에게 망을 임대하지 않는 등의 방법으로 차별화된 거래를 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망 소유의 불균형에서 오는 불공정경쟁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전화사업자가 해당 서비스 부문에 참여하는 것을 차단하는 진입규제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 영국에서 BT(British Telecom)에서 영상서비스분야에의 진출을 잠정적으로 차단했던 것은 BT의 규모가 너무 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 망을 보유한 독과점사업자인 BT의 위상을 고려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방법은 망사업에서 범위의 경제를 제한하며 나아가 국가경쟁력과 해당 서비스의 조속한 도입을 저해하기 때문에 각국은 망사업자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추세이다. 따라서 망을 가진 전화사업자에게 영상서비스를 허용하되, 시장행위로서의 망 액서스에 대한 수직적 차단이나 차별화, 불공정 가격설정 등을 공정거래 차원에서 사후 규제하는 방안을 마련하여야 한다. 한 사업자가 망을 소유하고 있으면서 내용물 제작, 서비스 제공을 수직적으로 결합하고 있을 경우에는 회계분리를 실시하여 공정경쟁을 저해할 수 있는 각 사업간의 상호 보조를 금지시켜야 한다. 그러나 시장에서 망사업자가 독점상태에 있다면, 이에 대해서는 상당기간 해당 경쟁서비스영역을 규제하는 조치가 불가피하다. 그리고 이러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하여 사업자가 거래할 수 있는 망사업자가 복수가 되도록 시장구조를 형성하여야 한다.
그러나 망사업자가 복수이더라도 그리고 외형적으로 불법적인 불공정행위를 하지 않더라도, 전화사업자가 경쟁서비스영역에서 전화서비스와 연계하는 등 다양한 패키지의 번들링(bundling services)을 제공하게 되면 이는 케이블TV사업자(SO)에게 아주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이 같은 경우에는 시장지배력의 남용을 금지하는 차원에서 어느 정도의 규제조치가 있어야 한다. 아울러 서비스 제공업자가 서비스 제작도 함께 한다면 자신의 내용물을 배타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여 경쟁을 촉진하여야 한다.
그러나 전화사업자는 영상서비스에 대한 노하우가 부족하고, 케이블TV사업자(SO)는 망 소유와 운영에 약점이 있으므로 새로운 경쟁서비스영역에서 자신의 장점을 서로 거래하는 제휴연대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1996년 통신법 개정이후 양 사업자가 각기 나름대로 새로운 영상서비스를 추구하였으나 실패하고, 제휴 또는 연대하는 양상으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이 같은 점을 감안하여 상호 보완적 구조를 낳는 인수나 제휴에 대해 정부는 다른 사업자에게 뚜렷한 폐해를 주지 않는 이상 이를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양 사업자가 상호영역에서 수평적 융합을 전개할 경우 여러 가지 경쟁상황을 고려할 수 있으나 기본적으로 망을 중심으로 한 불공정행위에 대한 규제, 콘텐츠를 둘러싼 불공정행위 규제, 그리고 콘텐츠 산업에 대한 규제는 자연스럽게 '규모의 경제'와 '범위의 경제'를 고려하여야 한다. 이러한 고려는 사업자들의 환경이 변함에 따라 사업자간 상호 보완의 필요성을 가중시키고, 상호 인수합병이나 제휴연대를 촉진시킬 수 있다.
2.현실적 이해를 고려한 경쟁
일반적으로 공정경쟁의 중요한 목표는 국가의 경쟁력 제고와 수용자 복지의 증진에 있다. 국가의 경쟁력 제고는 다름이 아니라 사업자의 역량증대, 즉 경쟁력 제고에 있다. 그리고 수용자 복지의 증진은 사업자들이 현실적인 여건 하에서 가장 질 좋고 효율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을 때에 가능하다. 이러한 사업자 구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앞에서 살펴본 보편적 차원의 공정경쟁 원칙을 설정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의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는 현재 케이블TV사업자와 전화사업자간의 융합에서 대두되고 있는 문제를 현실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융합적인 차원에서 기존의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사업자의 현실질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양 사업자가 수직적 융합을 시도하는 경우에는 현재의 사업구도와 국가경쟁력을 고려한 경쟁정책이 수반되어야 한다.
우리의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하여야 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과정이나 절차상의 공정성에 대한 결과가 효율성의 증진이나 국가경쟁력 향상으로 나타나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오늘날처럼 국가간의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는 사업자들의 역량을 극대화하여야만 결과적으로 수용자의 복지증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여건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현실질서를 고려한 '규모의 경제'와 '범위의 경제' 논리를 통하여 공정경쟁 방안을 모색하여야 한다.
우선 '규모의 경제' 차원에서는 미디어산업이 국제화(미디어기업의 국제화, 서비스의 국제화)함에 따라 국내사업자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기 위해서는 사업자의 육성이 필요하다. 즉 통신과 방송의 융합적 서비스를 동시에 제공할 수 있는 거대 미디어 복합체의 형성이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필요하다. 정보고속도로, 멀티미디어사업 등 신규사업의 조기정착을 위해서도 이미 미디어 경영의 노하우와 인력 그리고 자본을 보유한 사업자에게 서비스 진입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규모의 경제'는 사업의 수평적 확대나 수평적 통합을 통해 이뤄지는데, 무한정의 팽창이 '규모의 경제'를 확대하는 것은 아니다. 한계비용이 낮아지다가 다시 증가하게 되면 일단은 규모의 확장에서 오는 수익률 증가는 변곡점을 이루게 되고, 곧 적정 생산수준에 도달하게 된다.34) 따라서 반독점규제 대상이 되는 독과점사업자의 시장점유율 이외에도, 규모의 경제에서는 내재적으로 그 범위와 규제조치에 실질적인 한계가 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방송과 통신부문의 사업자에게 '규모의 경제'를 어느 정도 확보해 주는 대신에 보편적 서비스의 의무를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 방송과 통신의 융합으로 지배적 사업자는 기존 망으로부터 어느 정도의 성과를 얻지만 사실상 새로운 망의 확보나 개선에는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케이블TV사업자와 전화사업자간의 융합은 사실상 '규모의 경제'를 확장하여 새로운 투자를 유발시키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특히 초고속 정보통신망의 구축으로 연결하는 차원에서 그 효과가 유발될 수 있다. 따라서 적절한 수준에서 '규모의 경제'를 확장해 주는 것은 사업자 측면에서의 수익 증진과 함께 소비자 측면의 편익 증진에 도움을 준다.
'규모의 경제'와 함께 고려하여야 하는 점이 '범위의 경제'이다. '범위의 경제'란 기존의 설비를 이용하여 기존생산물과 유사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추가로 생산하는 경우에 한계비용을 낮추고, 효율성을 창출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범위의 경제' 전략은 '규모의 경제'가 한계에 봉착한 사업자들이 추구하는 방법이다.
정보통신부문에서 기존에 네트워크를 소유한 경우에는 '범위의 경제'를 추구하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으며, 이는 사업의 다각화로 나타나고 있다.35) 실제로 EU는 1996년 1월 1일에 케이블TV 유통네트워크를 이용하여 전화서비스를 실시토록 허용하였다. 그리고 1998년 1월 1일부터는 이를 통한 음성전화서비스까지도 자유화하였다. 이같이 EU가 정보통신분야의 경쟁체제화와 자유화를 실시한 이유는 '범위의 경제'를 통한 이를 사업부문의 효율적인 자원활용, 기술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다. 물론 이러한 정책은 공정한 경쟁의 틀을 침범하지 않는 차원에서 보장한다.
그러나 EC위원회가 범위의 경제에 대한 효과를 연구한 결과, 케이블TV와 통신의 통합 소유가 혁신을 야기했으나 반경쟁적인 현상도 초래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당초 1997년 말에 EC위원회는 Draft Directive에서 겸영(cross-ownership)문제를 다루었다. 초기의 논의과정에서는 케이블과 통신네트워크에서 지배적인 운영업자에게는 두 분야의 분리운영을 요구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DT(Deutsche Telecom)가 케이블TV 인프라를 90%이상 통제하고 있는 독일 등 회원국들의 저항으로 이 안은 후퇴하였다. 결과적으로 Draft Directive는 지배적인 운영업자가 법적으로 케이블TV네트워크와 공중통신 네트워크를 분리할 것만을 규정하였다.36)
네트워크의 통합 또는 멀티미디어 환경에서 '범위의 경제'로부터 혜택을 보려는 많은 사업자들은, 단순한 음성서비스로부터 쌍방향 응용서비스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전통적인 방송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전분야에 걸쳐 멀티미디어서비스를 제공하려고 희망할 것이다. 따라서 미디어산업이 기존의 사업을 기초로 하여 유사서비스에 진출할 경우 한계비용이 저렴하기 때문에 적극적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다. 망을 소유한 사업자의 경우 통신과 방송의 융합서비스를 제공할 때에 망의 효율성을 높여주게 되므로 여러 가지 서비스 제공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규모의 경제나 범위의 경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는 그 기본 성격상 공정경쟁 질서를 위배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보다 더 공정경쟁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는 것은 바로 현실여건의 논리이다. 현실적으로 특정사업자만이 방송과 통신의 융합적 서비스를 제공할 능력이 있을 경우에는 경쟁질서를 어길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과점구조 하에서는 현실여건을 고려하여 공정경쟁 질서를 제도화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발생한다. 대표적으로 우리나라에서 한국통신이나 한국전력 이외에는 케이블망 가설을 맡길 만한 여력이 없기 때문에 시장질서와는 관계없이 이들에게 사업권을 준 것도 현실질서를 인정한 하나의 예이다.
아울러 현실적인 차원에서 국제사회의 시장개방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하여 보편적인 차원의 규칙에서 벗어난 공정경쟁의 질서를 설정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WTO, OECD 체제 하에서 국내 미디어시장을 개방해야 하는 현실에서 국내사업자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규모의 경제를 추진할 수밖에 없는 것도 현실논리를 적용한 예이다. 따라서 현실질서 차원에서 여러 사업자 중 특정사업자가 경쟁력을 갖추도록 독과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실여건상 어쩔 수 없이 현실의 지배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점도 고려하여야 한다. 즉 우리나라 무궁화호 위성발사, 오라이언 위성방송의 채널 확보 등은 엄밀한 정책논리에 의해 결정되었다기보다는 주파수 및 정지궤도의 확보 차원에서 허용한 경우이다. 이는 국제적인 위성방송 시대에 대처하기 위해 위성방송의 조기 추진이 필요하다는 측면이 강하게 작용하였다. 따라서 케이블TV사업자와 전화사업자간의 경쟁과정에서도 국가경쟁력의 제고 측면에서 필연적으로 이미 확립된 질서 하에서 효율적인 경쟁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정부정책은 공정경쟁의 측면에서는 바람직하지 않으나 현실의 질서를 무시할 수 없는 딜레마의 상황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음 페이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