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지상파TV의 디지털 전환배경
방송 디지털화의 1차적인 동인은 무엇보다도 기술발전에 있다. 1920년 미국에서 음성과 음향신호를 전달하는 정규 라디오방송을 시작한 이후, 1930년대에는 동영상까지를 원격전송할 수 있는 TV방송이 등장했고, 1948년에는 최초의 케이블TV가, 그리고 1953년부터는 컬러TV가 본격 방송되기 시작했다. 1977년부터는 상호작용적인 케이블TV가 선보이기도 했다. 1984년에는 직접위성방송(DBS)이, 그리고 1991년에는 고화질(HDTV)방송이 일본에서 시작되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라디오는 라디오대로, TV는 TV대로 다양한 형태의 다중방송(예 :FM다중방송, 문자다중방송, 정지화방송 등)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했다. 1920년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의 70여년간의 이러한 방송기술 발전은 아날로그 방송의 진화사(史)에다름 아니었다.
‘방송 패러다임의 변화’로 일컬어지기도 하는 방송의 디지털화는 1990년대부터 2000년대로 이어지는 방송기술 및 서비스에 있어서의 획기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즉 기존의 아날로그 방송이 ‘방송’(broadcasting)이라는 개념 하에서 일방향의 비교적 제한된 서비스를 제공했다면, 디지털방송은 디지털기술이 지닌 일반적 특징 -고화질·고음질 서비스 제공, 대용량 저장 및 전송, 다채널화와 쌍방향 서비스 등-을 방송에서도 구현할 수 있게 함으로써 방송과 통신기능(인터넷 포함)의 융합과 함께 방송을 통한 멀티미디어 서비스를 구현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4)
디지털기술을 이용한 방송의 고도화 및 고기능화가 구체적으로 현실화됨에 따라 주요 선진국들에서는 기존의 아날로그 방송체제를 디지털체제로 전환시키는 것을 시청자 복지증진 및 관련 산업육성 차원에서 중요한 국가정책 목표로 삼게 되었던 것이다.
특히 지상파T V의 디지털화는 방송사는 물론, 시청자, 방송 관련 기기제조업자나 프로그램 제공업자에게도 여러 가지 새로운 기회를 제공함과 동시에 변화에 대한 새로운 대응을 요구하는 것이다. 또한 지상파 디지털화는 단순히 방송계나 방송사-시청자간의 관계에만 변화를 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방송 관련 각종 기기산업이나 소프트웨어 영상산업에도 국제적인 규모의 새로운 시장을 제공하기 때문에 각국 정부는 이를 방송정책 차원에서 뿐 아니라 산업·경제적인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한 변화로 인식하여 이를 정책적인 주요 과제로 설정하여 추진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방송의 디지털화를 추진하는 정책당국자나 기술관료들, 그리고 지상파 디지털TV를 수용하는 방송사 경영진이나 방송산업 관련자들은 디지털T V로의 전환이 시청자, 방송사업자, 방송기기 및 소프트웨어 제작업자에게 줄 수 있는 이점과 그것이 경제발전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들을 주로 강조해온 바 있다.5) 그러한 이점과 파급효과를 디지털TV 전환의 동기나 필요성 혹은 배경으로 제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존 주장들을 시청자, 방송사업자, 방송기기 및 콘텐츠 제작자, 그리고 경제적 측면 및 사회문화적 측면으로 나누어 간단히 제시하면서 각 측면에서 예상되는 부정적인 면이나 문제점도 아울러 제기하고자 한다.
1.시청자측면
우선 시청자 측면에서는 디지털T V를 시청하는 경우, 기존 T V보다는 2∼3배 선명한 화질의 영상과 CD수준 음질의 방송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고, 기존 아날로그 한 채널의 주파수 대역폭으로 보다 많은 다채널의 방송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됨으로써 채널선택의 범위가 확대될 뿐 아니라6) TV수상기에 장착된 메모리 기능과 쌍방향성을 이용하여 기존의 프로그램 서비스 외에도 데이터방송 등 다양한 부가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제시된다. 그밖에도 영상과 음성신호에 대한 접근을 다양화하고 임의 조정할 수 있어 장애자나 고령자를 위한 복지방송의 실현이 가능하며, 잡음이나 고스트의 영향을 적게 받아 이동수신도 가능하다는 등의 이점이 제시되기도 한다.
그러나 디지털T V로의 전환과정에서 시청자들은 이를 수신할 수 있는 새로운 설비를 구입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유료방송을 이용할 경우 일정한 경제적 부담이 따른다. 또한 앞서 언급한 고화질·고음질의 다양한 디지털 방송서비스는 모든 이들에게 무조건적으로 서비스되는 것이 아니라 가시청권 내에서 일정한 경제적 여건과 수신설비를 갖춘 수신자층부터 이용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방송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하더라도 지역에 따라 혹은 경제적 능력에 따라 일부 사람들은 디지털TV 이용에서 배제될 가능성도 있다고 할 것이다.
2.방송사업자 측면
방송사업자 측면에서는 다채널방송 혹은 데이터방송 등을 통한 보다 다양한 서비스가 가능하여 아날로그 방송에 비해 비즈니스의 기회가 확대되고, 다기능 컴퓨터의 활용으로 제작의 다양성과 효율화를 기할 수 있으며 ,데이터저장 및 보존의 안정성으로 프로그램의 다각(재)활용이 가능하다. 그리고 쌍방향 통신기능의 활용으로 시청자와 보다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프로그램을 제작, 송신할 수 있고 아날로그 방송에 비해 송신전력이 적게 들기 때문에 에너지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는 등의 장점이 강조된다. 특히 기존 방송사업자의 경우는 기존의 방송망과 인력, 방송제작 및 편집 등의 방송운용 능력을 보유하고 있어 방송허가 및 운용 등에 있어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할 것이다.7)
그러나 기존 방송사업자라 하더라도 디지털전환은 기존의 아날로그 방송 제작장비나 설비 및 송 중계시설 등을 디지털체제로 전환해야 하고, 인력 역시 디지털방송에 부합되도록 재교육하거나 신규인력을 대거 충원해야 하므로 디지털화에 따르는 상당한 재정부담을 안게 되는 문제점이 있다고 할 것이다.
3.방송기기 및 콘텐츠 제작자 측면
또한 방송기기 제작자들에게는 디지털 수신기를 비롯한 각종 방송 관련 기기 및 장비시장이 확대되고, 독립제작사와 각종 디지털 콘텐츠 제작자들에게도 다채널화 및 부가서비스 확대에 따른 프로그램 및 콘텐츠 수요가 폭증할 뿐만 아니라 네트워크와 서비스의 통합 및 국제화에 따라 시장규모가 크게 확대될 것이라는 식의 긍정적인 비전이 제시되곤 한다.
그러나 고도의 기술을 요구하는 디지털 방송장비와 각종 콘텐츠 등이 확대되는 시장에서 경쟁력을 지니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누적된 기술력과 노하우 및 상당한 연구개발 투자가 필요하므로, 기술력과 자본력에서 크게 앞선 선진국의 방송장비 업체나 영상 소프트 제작자들의 보다 확대된 시장독과점을 우려하는 소리도 적지 않다.
4.경제적 측면
여기서 더 나아가 디지털TV 전환에 따른 경제적 파급효과가 막대하다는 점이 종종 강조된다. 디지털TV 수상기와 셋톱박스는 물론 디지털 VCR이나 캠코더 등 관련 기기시장과 영상 콘텐츠 시장의 활성화와 함께, 디지털TV 조기도입에 따른 수출경쟁력의 증가와 대규모 신규고용 창출 등의 효과가 보다 구체적인 비전으로 제시된다. 예컨대, 2010년까지 세계 디지털TV 수상기시장규모는 800조원 이상으로 성장하며, 국내기업의 수출은 180여조원, 내수는 48조원에 달하고, 그 때까지 9만명의 신규고용을 창출할 것이라는 비전이 제시된 바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적 파급효과 역시 우리나라를 포함한 각국의 디지털TV 전환계획이 순조롭게 추진되고, 디지털TV 수요가 예상대로 확대되며 국내의 기술력이 일정한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갖는 것을 전제로 하는 희망치라고 하겠다.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