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 요약 및 논의
방송은 하이테크산업, 지식산업으로서 수확체중의 법칙이 적용되는 현대경제의 대표적 상품의 하나이다. 이 상품은 기술과 지식, 소비자의 습관, 네트워크 외부성(externality)이라는 3가지 요소가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시장에 속해 있다. 즉, 이 상품은 한번 성공하면 계속 성공하여 시장을 석권해 버리는 포지티브 피드백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경쟁 시대의 방송시장에서 이러한 속성이 방송제작, 또는 생산자에게 던지는 많은 시사점들을 이해하고 시장에 뛰어드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예를 들어, 기술과 기획에 대한 과감한 투자는 소비자의 습관을 형성시키고 네트워크 외부성이 주는 이득을 받게 되어 성공에 이르게 된다. 이를 위해서는 변화 하는 소비자의 욕구를 미리 파악하고, 특정 방송 프로그램 장르, 또는 프로그램 채널(예를 들어, 케이블TV의 전문채널)내의 시장변화를 예민하게 주시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하나의 프로그램, 또는 하나의 방송채널이 성공하였다고 해서 이를 계속해서 끌고가는 것보다는 새로운 장르로 전환시키고 소비자를 계속해 붙잡아 두며 경쟁자를 배제시키는 소위 업그레이드(upgrade) 전략도 필요할지 모른다. 활발히 변화하는 시장에 즉시 대응할 수 있도록 조직 구성도 탄력성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한 부서가 필요하면 신설했다가 필요가 없어지면 쉽게 폐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방송사 내에 특공대와 같은 '임시 임무수행팀'(mission oriented team)을 만들어 R&D팀이 개발해 놓은 아이디어나 시범 프로그램(pilot program)을 현실화하고 그것이 유용성이 있다면 이를 정규화하고 이 팀은 다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나가는 방식도 고려해볼 만하다.
마치 카지노에 뛰어든 노름꾼처럼 이곳 저곳을 두리번거리다가 한 게임에서 성공하면 계속 돈을 걸어 승리한 뒤 과감히 판을 떨쳐버리고 새로운 판을 찾아 가는 것이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세계에서의 미덕이다. 인간의 의미를 다루는 방송이 이러한 게임의 법칙에 따르는 것은 결코 우리가 바라던 바가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방송상품의 속성이, 또한 세계화라는 구호아래 자본이 스스로의 집중과 집적을 위해 국경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시대조류가 이러한 법칙을 거부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단 이 세계에서 패배하지 않아야 우리가 우리의 방송상품에 대해 통제력(leverage)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투철한 경쟁의식은 긍정적 측면에서 보면 프로그램의 질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방송을 상품으로 간주한다고 하여 질이 낮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를 통제할 때 제작자의 창조력이 마비된다. 한국 방송의 질이 문제가 되는 것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아래서 마비된 제작자들의 창조성 때문인 듯하다(다만 폭력물과 음란물에 대해서는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탈규제 시대의 추세다). 상업화는 탈정치화를 동반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공영역으로서의 방송개념을 전체시장에 적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차라리 시민들이 자신들의 사상을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장을 별도로 만들어 가는 것이 보다 현실적일 듯하다. 과거 서구에서 중세 권위주의 체제가 해체되면서 자유주의가 상업주의와 동반해 나타난 뒤 여기서 파생되는 불평등의 문제를 점차 해결해 왔듯이 한국에서의 방송도 일단 과거의 권위주의를 해체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 해체는 방송을 상품으로 간주해 시장의 원리에 맡기는 것이 효율적이고 또한 현실적이다. 그 뒤에 사상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들을 다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과거 1980년 신군부가 정권을 잡은 뒤 상업언론들을 통합해 공영화하는 정책을 만든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권위주의의 강화를 가져와 사고의 획일화가 강제되었을 뿐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일단 방송을 상품으로 간주해 현실원리에 맞추어 생산해 보자는 것이 이 글이 의도한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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