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조선에서의 단파방송 통제
1) 전시하의 방송통제의 배경
1927년 경성방송국의 개국 이후 방송매체는 사상적 차원에서 관리되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경찰의 관리를 받았다. 25)그러나 1937년 중일전쟁 이 후 한반도의 병참기지화를 목표로 한 군국주의 색체가 더 적어지고 1941 년 12월 대미 선전포고로 태평양 전쟁이 격화되면서 방송은 더욱 강력한 군사통제하에 들어갔다.
한국에서의 방송통제 근거는 먼저 경성방송국 개국과 함께 제정한 라디오 방송청취 규칙에서 수신기의 제작을 금지시키고 경찰의 감시체제를 확립함으로써 표현 통제에 들어갔다.
그러나 1930년대 이후 확대 개발된 단파방송의 보급으로 전파는 국경을 넘어 들어오게 되고 단파 수신기의 보급은 일제의 전시 통제된 정보체제를 교란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일제가 자국에서 1930년대에 단파방송을 실시하여 해외 연락과 국제 선전체제를 확립해가면서 조선에서도 이를 청취할 수 있도록 단파방송의 보급이 이루어졌다. 현재까지 밝혀진 자료로는 조선사회에 방송매체의 개발이 허용되지 못했던 것처럼 단파수신기 역시 상품화할 수 있도록 개발이 허용된 근거는 없다. 30년대 이후 더욱 확대된 국제 선전전으로 일제는 단파방송의 보급과 통제를 동시에 병행해 간 것이다.
그러나 태평양 전쟁이 확대되면서 중국과 미국은 국제 선전체제를 강화하고, 앞에서 보아온 것처럼 한국어 단파방송을 실시하여 조선 사회의 독립정신을 고취시키는 동시에 일제의 그릇된 정보에 속지 않도록 한 것이다. 일제의 전황이 불리해 가는 것이 단파방송을 통하여 조선에 전달됨으로써 허위 선전이 드러나고 전시하의 단합을 이완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조선 내에서는 일제가 제공하는 전시 정보와 선전이 주요 내용으로 되었기 때문이다.
앞에서 기술한 중경과 샌프란시스코의 방송은 조선에서 수신이 가능하고 일본, 중국에까지 정보교류가 가능하게 되었다. 단파방송의 통제는 바로 이러한 방송의 수신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국내의 경성방송국 편성을 통제하는 것이 표현통제라면 단파방송의 수신 금지는 수용통제가 된 것이다.
당시 조선에서는 방송공학기술이 전혀 이전되지 않고 철저한 일제 종속 상태의 소비시장화 하고 있었다. 라디오 수신기의 공장이나 부품의 생산이란 전혀 불가능한 상태였고 중파나 단파 수신기 모두 미국산이나 아니면 일본산이 주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보급된 양상을 살펴보면 상당수의 단파 수신기는 조립한 것으로 유추된다. 1942년 단파방송 청취탄압에 연관된 단파방송 수신기 숫자는 32대이고 여기에는 23명이 단파 수신기 제작에 대한 혐의를 받게 된다. 26)그러나 이들 수신기는 조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2) 단파방송 수용 탄압
태평양 전쟁 이전에 이미 조선에서는 일본으로부터의 단파방송과 중국을 비롯한 외국 단파방송을 수신하는 것이 가능하였다. 그러나 전황이 불리하게 되면서 방송국의 직원도 단파방송의 청취는 완전히 금지되었다. 일제의 자국 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태평양 전시하의 조선은 하나의 지하방송 채널조차도 없이 철저한 통제 상태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정보의 입수에 미국과 중국으로부터의 단파방송 전달과 비밀 수신은 중요한 정보채널로 역할을 다 할 수 있었다. 반면에 일제는 이를 철저하게 통제하려 한 것이다. 청취 금지하에서도 단파방송의 수신은 이루어졌고 1942년에는 청취가 탄로나면서 냉혹한 수용 탄압이 이루어지게 된다. 조선인으로 볼 때는 정당한 정보접근의 탄압이 되지만 일제는 식민지 정책에 입각하여 일종의 사상범으로 다룬 것이다.
중국과 미국의 단파방송 편성 동향을 유추해보면, 조선으로 전달되거나 중국과 미국간에 통신되는 단파방송 정보는 많고 일제는 수신을 철저히 차단하고자 했다. 태평양 전쟁 중 선교사의 해외 추방시 단파방송 수신기를 압수했다. 27)전황이 악화되면서 방송인들에게도 청취가 금지되었다.
유병은이 저술한 단파방송 연락운동에 의하면 외국으로부터 오는 단파방송의 청취는 1938년부터 시작하여 1943년대까지가 많이 이루어진 것으로 기술된다.28) 탄압의 발단은 1942년 12원 방송국에 근무하는 성기석과 이이덕이 단파방송을 청취한 사실이 고등계 형사에게 발각되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지방방송국과 조선방송협회 직원 및 라디오 상담요원 등 약 150명과 민간인 약 180명 등 350명 정도가 검거된다. 약 70명이 형을 받았고 이 중 1년 이상 형을 받은 사람은 17명이 된다. 이들에게 적용된 법률은 약 10 가지가 된다. 29)
여기서 중요한 의미는 단파방송 청취 자체가 조선의 동포에게는 중요한 정보 진원으로 작용한 것이다. 그러나 국내에는 독특한 청취확산운동 체제나 수신한 정보의 비밀유통체제를 갖추었던 흔적은 아직 발견되지 않는다. 경성방송국이나 조선방송협회에 근무한 사람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민간인에까지 확대 보급이 이루어진 상태였다. 다수의 방송인이 단파방송을 청취한 것이 국내의 독립운동을 직접적으로 촉진시켜 주거나 방송을 수신하고 해외의 연락에 기여한 흔적 역시 거의 없다. 경성방송국의 직원이나 민간인의 청취와 정보유통이 일제의 안목에서 볼 때는 유언비어 유포로 취급되었다. 청취한 경성방송국 소속 조선인 직원이 국내의 독립운동에 결정적으로 정보를 제공해주거나 청취 확대를 권장한 흔적은 아직 뚜렷이 발견되지 못하고 있다. 반면에 미국과 중국의 경우는 상호연락 방송을 실시한 자취가 남아 있어 방송이 정보교류와 연락의 채널이 되었다는 것이 입증된다.
3) 단파방송 수용의 의의
1930년대 이후 일제하의 조선사회에서는 경성방송국의 중파방송 체제와 함께 단파 수신기의 보급이 부분적으로 이루어졌다. 외국 선교사가 소지한 것이나 조립한 것 등이었다. 중일전쟁 이후 방송의 통제가 더욱 강화되었고 태평양 전쟁 발발 이후에는 단파방송의 수신을 금지시켰다. 태평양 전쟁에서 중국과 미국의 연합전선이 형성되고 독립운동이 이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중국과 미국에서 단파 채널을 통한 한국어 방송은 실시되었다. 전시하에서 수신이 엄격하게 통제된 상황에서 단파방송은 국내에서 활용되고 그 역사적 의미는 다음과 같이 규정될 수 있다.
(1) 중국과 미국에서 실시한 단파방송은 조선사회에 중요한 정보채널 역할을 하였다. 일제의 총력전 수행에 맞추어 일제의 전황이 통제되고 국내외의 독립운동 정보가 체계적으로 전달될 수 없었던 시대에 뉴스, 세계 전황, 해설, 민족단합을 독려하는 언론으로서의 기능을 하였다. 조선인에게는 중요한 정보채널 역할을 하였다.
(2) 단파방송은 중국과 미국이 각각 국가 전략적 차원에서 허용하였다. 중국의 경우는 매주 일요일에 임시정부 관계자에 의한 직접 방송이 1943 년부터 허용되었고 미국은 전쟁정보국이 직접 관장하여 방송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VOA프로그램 편성 동향을 볼 때 조선인의 정서와 의식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재미 조선인의 참여도 있었다
(3) 미국과 중국의 한국어 단파방송 상호 관계를 추정해 볼 때 해외의 독립운동을 확대 전개하는 것에 상호 이해와 연락을 확대시키는 것에 기여하였다.
(4) 조선에서의 단파방송 청취는 독립 의지를 고취시키는 데 기여한 것 임에 틀림없으나 조직적인 체제를 갖추고 청취 확대나 네트워크화를 통한 정보유통과 민중고무에 어떤 기폭제로 기여한 흔적은 없다. 1942년 일제의 단파방송 수용 탄압은 조선인의 정당한 정보접근과 수용을 막은 수용 탄압으로 판단되며, 이러한 수용 현상을 독립운동 연락방송으로 비약하는 논리에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된다.
(5) 미국의 VOA 한국어 방송부의 경우 단순히 한국어 방송만을 실시한 것이 아니다. 전쟁정보국이 주관하는 조선 - 일본관계 독립운동 정보제공 뿐 아니라 재미 조선인 중심의 독립운동 전개와 긴밀한 유대를 가지게 했다.
(6) 전쟁정보국의 정보활동과 VOA한국어 방송부의 대조선 방송활동은 미국의 대 조선 이미지정립에 큰 기여를 한 것으로 유추된다. 한국어방송 실시규모 역시 unit에서 section으로 또한 division으로 확대되고 편성이 심화되며 체계적이 된다. 종전 후 '방송센터' 건립계획은 미국의 한국 접근을 보다 원만하고 용이하게 하려는 계획으로 추정된다.
(7) 일제가 자국 방송의 기술개발과 보급을 강화해 나갔던 추세와 조선의 경우를 비교하면 조선에는 기술이전과 편성 개발을 현저히 막았다. 이에 대응하는 조선의 방송에 대한 인식 역시 저급하였다. 독자적으로 개발한 방송기술이나 외래기술의 능동적인 수용을 통하여 국내외 독립운동을 전혀 지원하지 못했다. 방송매체에 대한 인식이 근본적으로 낙후된 상태로 남아 있었다.
6. 결론
이 연구는 태평양 전시하에서 조선의 독립운동이 국내외에서 전개되고 있는 동안 단파방송 채널을 이용하여 중국과 미국에서 실시된 한국어 방송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 가를 살펴보기 위한 시도이다. 지금까지 연구 동향을 살펴보면 단파방송의 청취를 탄압한 일제의 잔학상은 규명되고 있으나 해외에서 이루어진 방송의 실체 자체가 전혀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었다. 국내에 잔존한 자료에만 의존하는 정도였다. 미국의 전쟁정보국이 샌프란시스코의 VOA 한국어 방송부를 통하여 실시한 한국어 방송, 중국, 중경의 중앙광파전대(中央廣播電臺, XGOY) 단파방송을 통하여 실시한 한국어 방송과 이를 수신한 조선 사회와의 관계는 거의 밝혀지지 않았다. 이 연구는 미국, 일본, 중국에 산재한 관계 자료를 수집하고 이를 규명하고자 하였고 특히 일본과 미국의 자료 발굴에 역점을 두었다. 미국의 국립기록 보존소소장 자료를 비롯한 문헌자료 및 일본에서의 수집자료가 주요 대상이 된 것이다. 미국 국립기록보존소의 녹음자료 및 당시 운용관계 자료와 일본에서 발견되는 당시 조선 방송경영을 유추할 수 있는 자료가 이 연구 진행에 주요 분석의 대상이었다.
해외에서 조선 독립운동이 전개되는 태평양 전쟁 동안 단파방송의 역할은 중요했다. 첫째는 조선 민중이나 독립운동가에게 국제정세를 알리고 민족적 단합을 호소하는 데 중요한 정보통로 역할을 하였다. 당시 조선에서는 전시하에서 경성방송의 제반 편성사항이 '대동아공영권' 또는 '신동아건설'이라는 기치 아래 철저하게 전쟁 동원으로 이루어졌을 뿐 아니라 단파방송 수신을 철저하게 통제하였다. 그러나 많은 보급이 이루어지지는 못한 상태였지만 미국과 중국의 방송수신은 정보의 근원이 될 수 있었다. 그 근거는 1942년 12월 단파방송 청취를 탄압한 사례에서 충분히 입증된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폐간되고 독립운동이 탄압받고 민중은 전시하에서 수탈당하고 기존 경성방송국의 편성이 철저히 일제의 전시정보조작으로 통재되는 상황하에서 단파방송의 수신은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었음에 틀림없다.
둘째는 해외에서 전개되는 독립운동에 긴밀한 연락기능을 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공동 이해를 바탕으로 정신적 구심점 구축에 기여하였다. 미국과 중국에서 실시한 단파방송 가청지역이 미국, 중국, 조선뿐 아니라 일본 및 시베리아까지를 영역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광역의 연락과 선전을 가능하게 했다. 그리고 단파방송이 이루어지는 국가에서 진행되는 독립운동을 체계적으로 공지할 수 있었다. 미국의 경우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북미의 조선인의 활동을 조선이나 중국에 전달할 수 있었다. 중국에서의 단파방송은 임시정부의 공식채널 역할을 하여 조선과 미국에 활동상황을 전달할 수 있었다.
셋째는 해외에서의 단파방송 실시는 그 국가의 전시하 방송선전 정책에 근거하여 이루어졌다. VOA는 미국의 전쟁정보국 지침에 입각하여 편성과 운용이 이루어졌다. 자료에 의하면 먼저 반드시 영문으로 대본이 작성되고 한글로 번역되었으며 미국식 전시 보도지침에 근거하여 이루어졌다. 방송운용에 대한 정교한 분석평가와 편성이 이루어졌다. 중국의 경우는 한국어 방송 외에도 매주 일요일에 15분씩 임시정부가 직접 방송을 실시하도록 허용해 주었다.
넷째는 당시 일본이나 중국의 방송보급을 고려하면 조선은 방송에 대한 인식이 아주 지체되어 있었다. 방송기술의 개발이나 사회적 인식의 확대에 의한 활용 가능성 모색이 거의 되지 못한 상태여서 국내외의 독립 운동에 기여하지 못했다. 일제가 통제하는 상태에서 소극적인 자세로 남아 있었을 뿐이다. 이러한 소극적 인식은 해방 후에도 한국의 방송발전에 장애요인으로 남게 되었다.
독립운동에서 차지하는 단파방송의 위치는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까지 자료의 발굴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고 국내자료 중심으로 해석되어 왔을 뿐이다. 현재 발굴된 자료는 아직도 미흡하다. 해외에서의 자료발굴을 더욱 확대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의 자료 발굴이 보다 심화되어야 하고 특히 중국의 자료는 처음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일본에서의 관계자료 발굴도 더 필요하다. 미국과 중국이 일제에 대응하여 실시한 단파방송 선전의 골격에 대한 보다 분명한 이해와 재조명이 더욱 필요하고 이 채널을 통하여 이루어진 조선인의 독립운동의 양상도 보다 체계적으로 규명되어야 한다. 당시 조선에서의 수용양상을 규정할 수 있는 자료의 발굴도 국내에서 더욱 이루어져야 한다. 독립운동과 단파방송, 태평양 전시하의 중국, 미국, 조선 그리고 일본의 관계를 배경으로 한 역사적 의미와 방송으로서의 의미 규명이 앞으로 더욱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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