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각 분야에 걸쳐 활발한 토론문화가 발달되어 있고 가정 내에서도 가족간의 토론이 생활화된 미국과 달리, 말을 아끼고 논쟁을 억제하는 것이 미덕이 되어 있어 토론문화가 아직 성숙되지 못한 우리 나라에서 어떤 방법으로 미국식 TV 토론 문화를 접목시키는 것이 우리 정서와 실정에 맞는 지에 대한 연구가 있어야 하겠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토론이 활발하고 격렬할수록 흥미를 느끼게 될지 모르지만 이런 토론문화에 익숙하지 못한 시청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도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미국의 TV 토론은 세계방송사상 가장 활발하게 발전해 왔기 때문에 앞으로 후보 방송토론 제도를 도입할 우리에게 많은 참고가 된다. 주지하다시피 미국의 후보토론이 처음부터 완전무결하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다만 지난번 토론방식의 문제점을 반복하지 않도록 방송사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조사하고 새로운 형식을 채택한 결과가 지금과 같이 영향력 있는 장르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시대별로 후보의 TV 토론 형식과 내용을 요약하면 (표 3)와 같다.
92년 미국의 TV 토론은 부통령간의 토론을 포함 네 차례 방송됐는데 매회마다 새롭게 형식을 달리해서 시청자의 요구에 부응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3차 토론은 전후반 각 45분으로 나누었는데 전반에는 사회자 1인이 대통령 후보 3인에게 차례로 질문한 후 후보자들간에 토론이 허용되었고 후반에는 질문자 세 명이 참여하는 방식이었다. 우리 나라의 경우 TV 토론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우선 민자, 민주, 국민 3당의 합의가 있어야 하겠지만, 방송 실무자 입장에서도 토론방식과 내용 등에 관해 자체적인 복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런 뜻에서 필자가 TV 토론 방법에 대해 제안한다면 다음과 같다.
(1) 후보자가 3인 이상일 때 9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후보는 민자, 민주, 국민당 후보를 포함, 5명이었다. 너무 많은 후보가 나오면 사실상 후보토론의 공정성을 확보하기에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적정 출연자수는 방송시간 길이와 방송형식에 따라 다르지만 선거토론 방송에는 미국의 경우처럼 2∼3인의 후보가 적합하다고 본다. 미국에서는 60년 유명한 닉슨 - 케네디 TV 토론 때도 후보자는 16명이나 되었고 이번 선거에서도 20여명의 후보가 출마했지만 결국 주요정당의 후보 2인과 3인의 토론이 진행되었다. 90년에 열렸던 일본의 5당수 토론회에서도 25명 이상의 후보자를 낸 정당만 초청되어 정치적으로 무의미한 후보는 배제시킨 것이다.
토론은 2인일 때 가장 활발하고 논점이 분명할 것이다. 그러나 제 3후보자도 객관적으로 상당한 세력을 인정 받을 때에는 이를 포함 3인 토론까지는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4인 이상이 될 때에는 토론의 역동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내용상 균형이 깨질 우려도 있으며 시청자로 하여금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 혼동시킬 우려도 있다. 특히 우리 나라의 경우 3인 이상이 출연하게 되면 여당 1인에 대해 나머지 야당 후보들이 의도적으로 여당후보자만 공격할 가능성이 많아 여당후보가 TV 토론을 기피할 우려가 있다. KBS의 정치토론 프로그램의 역할을 하고 있는 (심야토론)의 예를 보더라도 다양한 의견의 개진보다는 '여'냐 '야'냐 하는 이분법적 논리에 의해 편가르기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야가 대립하는 내용의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에는 여당에서 2명, 두개의 야당에서 각 1명씩 2명을 초청, 출연진을 구성했다. 초기에 이 방식에 대해 비판도 있었지만 이제는 여·야가 묵시적으로 인정하는 관행으로 정착되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정황을 두고 보더라도 토론자 수는 2∼3인으로 제한 하는 것이 적절하며 나머지 후보들은 별도로 토론회를 갖도록 허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2) 토론형식의 횟수
토론형식에서 우선 고려해야 할 점은 후보자의 메시지가 유권자에게 효율적으로 전달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은 유권자들에게 유익하도록 짜여져야 하며 토론 프로그램의 생명인 현장감과 긴장감 그리고 역동감을 지녀야 할 것이다.26)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 처음 시도되는 TV 토론임을 감안, 어느 후보자에게나 만족할 만한 발언기회나 시간을 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설혹 한두 번의 실수가 발생한다 해도 방송횟수는 후보자들이 이를 만회할 수 있도록 3회에 걸쳐 토론회를 개최하는 것이 적합하다. 매회마다 어떤 형식과 내용을 갖출 것인지에 대해서는 좀더 구체화시켜 시안을 제시한다.
제 1회 토론
·진행자 1인과 토론자 3인으로 한다.
·모든 분야에 걸친 후보자의 정견을 듣는다(10∼15분씩).
·사회 및 출연자 선정은 대선후보토론준비위원회가 결정하고 방송 3사의 동의를 얻는다.
·토론은 토론자들과 후보자간의 질의·응답식으로 진행한다.
제 2회 토론
·진행자 1인과 토론자 3∼4인
·선거에서 이미 쟁점으로 부각되어 국민적 관심사가 된 문제를 중심으로 토론을 전개한다.
·토론 전 후보자들에게 5분씩 발언할 기회를 준다.
·질의·응답식으로 진행한다.
·토론자는 방송사가 협의해서 선정하는 분야별 전문가로 한다.
·한 후보의 발언시간은 3분으로 제한한다.
제 3회 토론
·진행자 1인과 토론자 3∼4인
·1, 2회에서 토론한 내용 중 가장 의견이 대립되거나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된 문제 한 가지를 선정하여 단일 주제를 놓고 집중 토론한다.
·토론 전 10분씩 후보자에게 발언할 기회를 준다.
·토론자는 방송사가 협의 선정하는 전문가로 한다.
·토론이 끝난 후 각 후보에게 3∼4분씩 보충할 시간과 기회를 준다.
(3) 토론 주최자
토론의 주최는 TV방송 3사가 공동으로 하도록 하고 원칙적으로 여야 합의하에 모든 결정을 하도록 한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의 경우처럼 정당, 방송사를 주축으로 하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인사들로 구성된 대선후보토론준비위원회(가칭)를 준비할 필요가 있겠다.
5. 맺음말
인구의 증가, 거주지역의 확대, 유권자 의식변화 등 사회변동에 따라 대인 커뮤니케이션과 정당의 역할이 줄어들고 대신 매스미디어, 특히 TV가 발전하고 그 영향이 커짐에 따라 정치와 선거행태에도 많은 변화가 일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87년 언론민주화의 진전에 따라 선거에서의 방송의 역할이 강조되고 선거방송의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한층 높아졌다. 그러나 선거방송의 역사가 일천하기 때문에 제도나 운영상 허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 나라에도 선거방송을 위한 제도적·법적 장치는 일찍부터 마련했었지만 비교적 선거방송다운 선거방송은 13대 총선과 대선부터 시작됐다고 해야 타당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선거방송을 이제부터 제도적으로 확립해 나가는 과제가 방송인들에게도 주어졌다.
미국의 예에서 보았듯이 선거를 비롯한 주요 정치현안에 대한 공론화 및 사회적 토론 과정에서 TV가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된 이후 30여년 동안 많은 변화와 경험을 쌓으면서 오늘과 같은 TV선거 문화를 창출해냈다. 선거보도에 대한 많은 학문적 연구와 제도적·법적 장치, 공정성 확보를 위한 방송내부의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이 쌓여 미국의 선거방송과 같은 훌륭한 전통이 확립되었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제 시작하는 우리 나라도 우리의 문화와 전통·정서에 맞는 선거방송 문화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선거방송이 객관적이고 올바르게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는 그 엄청난 영향력 때문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60년 케네디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 할버스탐은 "텔레비전은 케네디를 사랑했다. 텔레비전 없이는 케네디는 대통령으로 뽑힐 수 없었다"라고 단정적으로 썼다.27) 이처럼 TV의 선거방송은 영향력이 크며 케네디의 승리도 흔히 TV를 통한 이미지 전략의 승리라고 한다. 이미지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선거행위에서도 감정적인 면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즉, 유권자들은 후보의 정견이나 선거공약보다 그 사람이 주는 인상에 크게 좌우된다는 것이다. 이미지 조성의 대표적 매체인 TV가 선거전에 차지하는 비중이 큰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28) 그렇기 때문에 TV의 책임도 그 만큼 클 수밖에 없다.
선거방송에서 공정성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방송의 공정성은 스톱워치나 현미경적 검사가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무엇보다도 방송사와 방송인의 전문성에 근거한 자율성 제고가 우선되어야 하며 방송에 영향을 끼치는 정치권, 유권자들의 의식변화가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TV가 다양한 계층에게 보다 참여의 기회를 확대하고 다양한 의견수렴을 통해 활발한 여론형성 기능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여러 가지 제약으로 TV의 역할이 미흡했기 때문에 이런 점에서 TV의 공정성에 대해 논란이 거듭되어 왔다. 선거기간뿐 아니라 평상시에도 정치적 이슈가 활발히 토론되고 논의되어야 여·야의 정치쟁점과 정책, 우리 사회의 문제가 자연스럽게 국민들에게 이해되고 알려져 투표권 행사에 올바른 판단을 제공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방송은 선거에는 물론이고 사회적 문제, 특히 정치문제에서 보다 활발한 역할이 필요한데 실제는 그렇지 못한 상황이다. 대표적 TV 토론 프로그램인 (심야토론)에서 지난 5년 동안 방송된 내용 중 정치관련 문제를 다룬 프로그램의 추이를 분석하면 (표 4)와 같다(87. 10. 17∼ 92. 9. 26, 총 226편).
위의 표에서 알 수 있듯이 6·29 초기와 비교해 정치관련 주제가 감소했다. 이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정치의 쟁점화를 기피하는 정치계에 제일 큰 원인이 있다고 하겠다. 짧은 선거기간에만 제한된 정치방송의 활성화가 아니라 평상시의 정치에 대한 활발한 토론과 논의가 있어야 민주주의가 더욱 발전할 것이며 이런 정치문화가 선거방송의 발전에도 좋은 밑거름이 될 것이다. 여·야 합의로 91년 12월 10일, 국회는 국회 본회의 및 위원회의 TV 생중계를 허용하기로 하고 전문 13조에 "국회에서의 중계방송 등에 관한 규칙"을 통과시켰다. 92년 11월 4일 개정된 선거법에는 TV 정치광고도 허용되었다. 정치방송의 개방이 곧 선거방송의 공정성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양적 변화는 가져오리라고 기대한다.
다음 페이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