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선거운동 이전, 이후에 3대 네트워크의 후보에 관한 보도에서 가장 중요한 보도가치 (value of network coverage)는 무엇인가.
(2) 후보 모두에게 시간동등의 원칙을 적용해야 하는가
(3) 네트워크는 어떻게 해야 책임지고 후보의 정견을 자유롭게 공표할 수 있는가.
(4) 후보, 정당 집회 등에 네트워크는 얼마만한 시간과 자금을 배분해야 하는가.
(5) 네트워크는 전당대회를 빠짐없이 보도해야 되는가.
이 밖에도 갖가지 문제가 제기되었으나 방송인들 사이에서는 위와 같은 점이 선거방송 과정에서 곤혹스러운 문제들이라는 것에 의견이 일치한다. 따라서 세계 주요 국가의 선거방송은 역사적으로 축적된 자료를 바탕으로 문제점을 해결해 나아가고 있다. 물론 각 나라마다 선거방송의 지향성과 방법상에 차이가 있고 문제성도 있으나 이를 지속적으로 보완 발전시켰다. 우리 나라는 선거방송의 제도적 보완은 물론이고 운영면에서 기본적인 원칙들을 정립할 시기가 온 것만은 틀림없다.
지금까지 미국, 프랑스, 일본, 캐나다 등 4개 국가를 중심으로 선거방송의 원칙과 실제에 대해 살펴보았는데 어느 나라이건 선거방송의 주요개념은 공정원리에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우리 나라에서도 선거방송에서 공정성이 가장 중요하게 강조되고 있으며 많은 학자들의 연구가 이론적으로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공정성의 구체적인 적용에서는 나라마다 다른 정치제도, 문화적 배경 그리고 상황에 따라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이론적으로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하더라도 일률적으로 다른 나라에 그대로 적용시킬 수 없다고 하겠다. 한편 우리 나라에서 공정성이 공개적으로 활발하게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6·29민주화 선언 이후라고 생각한다. 특히 방송에서의 공정성 문제는 더욱 그렇다고 보겠다. 60, 70년대에 학문적 차원에서 공정성 문제가 논의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방송현장에서는 그 개념조차 제대로 인식되어 있지 않았다. 대체적으로 그 시기에는 방송이 오락매체로 받아들여진 탓도 있지만 방송의 영향이 지금과 같이 크지는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여지며 특히 정치적 상황이 방송의 공정성을 논의할 틈을 주지 않았다고 하겠다.
TV 보급의 확대와 TV의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방송의 편파성, 공정성에 대한 관심이 커졌으며 특히 KBS시청료 거부운동의 계기가 되었던 85년 2월 제 12대 국회의원 선거기간에 드러난 원시적 편파방송의 결과로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뉴스보도는 말할 것도 없었고 '공명선거 캠페인', '미니드라마', '연속입체기획' 등 임시 편성된 미니 프로그램이나 스폿을 통해서 저급하고 야비스러울 정도로 야당을 비방했으며 때로는 위협적인 언사를 써서 시청자들로 하여금 여당을 지지하도록 강요하였다(김우룡,"TV 선거의 반성," (신문 연구) 1987 가을호)
6·29 이후 실시된 제 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방송의 보도태도에 많은 변화를 보였다. 앞서 인용한 (선거와 언론)의 조사에 따르면 제 13대 국회위원 선거에서 방송의 보도태도에 대해 '매우 공정했다' 3.9%, '대체로 공정했다' 22.9%, '그저 그렇다' 45.8%, '대체로 불공정했다' 20.8%, '매우 불공정했다' 6.7%로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이 많았다. 그러나 13대 국회의원 선거에 대한 방송학회, 언론학회, 기자, 프로듀서 협회 등의 세미나와 심포지엄에서는 선거방송의 공정성 문제가 계속 지적되었다. 그렇다고 공정성을 정확히 측정할 만한 기준이 세워지지 않았고 또 이런 것이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 갈등이 많은 우리 나라와 같은 사회에서는 계층 간, 지역 간, 세대 간의 인식차이로 공정성에 대한 기준에 합의를 이루기가 어렵다고 하겠다. 심지어는 이른바 시계추 이론을 원용해 과거의 편파방송과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역편파도 있어야 한다는 극단적 주장도 현실적으로 존재해 그 인식의 괴리를 극복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제 14대 국회의원 선거방송에 대한 각각 상이한 결론을 내리고 있는 방송위원회의 보고서와 방송노조, YWCA선감연 등의 보고서를 비교해 보면 우리 사회의 불신과 갈등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극명히 알 수 있다. 언론학회 춘계 세미나에서 발표한 "선거보도 모니터 활동의 진단과 전망"(김재범, 한양대 교수)이라는 논문에서는 14대 총선보도의 불공정보도의 유형 여섯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1) 정당(후보) 간 선거관련 보도시간의 배정에 있어 여야 간에 심한 불균형을 보였다.
(2) 보도내용은 선정과 전달에 있어 여당에 불리한 기사는 축소하거나 해명성 보도를 주로한 반면 야당에 불리한 기사는 확대되거나 강조됐다.
(3) 정당 및 후보자의 이미지가 기술적인 방법에 의해 왜곡·편파 전달되는 사례가 나타났다.
(4) 공명선거를 조성한다는 명목하에 일부 타락·부패 선거의 양상을 지나치게 강조해 정치에 대한 냉소주의와 허무주의를 조장해 유권자들로부터 선거를 소외시켰다.
(5) 남북 냉전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는 내용들을 외신을 이용하여 마치 객관적인 보도인양 보도하여 유권자들의 안정희구 심리조장을 유도하였다.
(6) 대통령 동정 보도와 함께 실천 가능성이 희박한 정부의 선심공약을 확대 인용 보도하여 여당후보자에게 유리한 보도 태도를 보였다.
한편 방송위원회의 "제 14대 국회의원 선거방송 내용에 관한 분석연구 결과"(이효성, 김학천 자문)보고서는 위와 다른 조사결과를 제시하였는데, 이를 앞서 지적한 여섯 가지 사례와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1) 정당 및 후보자에 대한 시간배분, 방송횟수 및 화면구성 등에서 양적 균형과 질적 균형을 유지하였는가와 관련해서는 주요 뉴스를 분석한 결과, 유세 장면 중 후보자간의 시간 배분에서는 거의 차이가 없어 후보자 간에 동등한 기회를 보장하는 대표적인 사례로서 매우 바람직한 것으로 평가된다. (2) 특정정당이나 후보자에게 유리, 불리하게 작용할 소지가 있는 프로 그램을 방송하였는가와 관련해서는, 선거기간 중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할 소지가 있는 프로그램을 편성한 경우는 네 개 채널 모두 해당되는 사례가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3) 화면 처리와 음향처리에서의 균형 여부를 분석해 본 결과 화면 구성에서는 클로즈업과 원경샷의 구성비라든가 클로즈업샷의 앵글 구성면에서 인물별로 의미 있는 차이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으며 음향처리에서도 의도적 차별은 없었다. 나머지 세 항목은 평가 기준이 달라 1:1로 비교할 수는 없으나 정치에의 참여 의식을 높이기 위해 적극적인 방송을 하는데 노력이 미흡한 것으로 평가했을 뿐 대체로 14대 총선 선거방송의 공정성에 대해 긍정적인 결과를 내리고 있다. 이와 같이 총선의 선거방송에 대한 상이한 평가는 우리 사회의 불신과 편견을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다. 따라서 선거방송의 공정성을 실제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방송 종사자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요구되지만 우리 사회의 편짜기식 편들기와 불신이 해소되지 않는 한 선거방송의 공정성 시비는 그치지 않을 것이다.
4. 선거방송의 쟁점
텔레비전의 영향력이 커지고 시청자들의 의식이 높아짐에 따라 선거방송의 공정성에 대한 많은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있었던 부시-클린턴 후보간에 전개된 선거전은 거의 텔레비전에 의존한 양상을 띠었다. 매체의 속성상 접촉이 용이할 뿐만 아니라 생생한 현장감의 전달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에 다른 어떤 매체보다도 강한 침투력과 호소력을 지니고 있어 후보자들도 TV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동시에 방송매체는 현실을 과장, 축소, 왜곡시킬 수 있는 기술적 제약 조건들이 많은 매체이기도 하다.13) 이러한 매체의 속성상 선거과정에서 TV가 끼치는 영향이 막대하기 때문에 선거방송의 공정성을 둘러싸고 이해세력 간의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으며 대선방송을 두고 사회적 관심이 한층 증대하였다.
텔레비전이 선거보도에서 지켜야 할 실무원칙으로 공정성, 정확성, 객관성 그리고 중립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들 개념들은 각 나라의 정치 제도, 정치문화에 따라 그 적용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고 상대적 개념이 될 수밖에 없다. 또한 이 개념은 판단하는 사람의 주관을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인식론적 문제를 가지고 있어 어떠한 상황에도 적용될 수 있는 절대적 기준이나 비판의 척도를 찾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14) 그렇기 때문에 선거방송에서 방송인의 책임과 자율성 확보가 더욱 큰 문제로 지적된다. 지난 13대 대통령선거와 13·14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대두된 선거방송에 관련한 주요 쟁점을 크게 나눠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정당 간의 동등시간의 원칙 적용문제
(2) 선거보도에 있어 화면처리와 내용의 균형성
(3) 후보자의 프로그램 출연제한
(4) 후보자 TV 토론15)
1) 동등시간의 분석
동등시간의 원칙은 선거보도에서 가장 원론적이며 기본적인 것으로 어떤 방법보다 공정성을 재는 확실한 척도로 거론되고 있으나 양적 균형이 반드시 질적 균형을 보장하지 않을 뿐더러 산술적이고 기계적인 동등의 원칙을 실제에 적용하는 데에는 현실적으로 많은 제한점이 있다. 선거보도에서 지켜야 할 원리로는 동등시간의 원칙 이외에도 보도의 정확성은 물론 뉴스의 가치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미국의 경우도 동등시간의 원칙이 선거방송의 공정성을 지키는 주요한 원칙으로 제도화되어 있지만 이 원칙이 (통신법)제 315조 규정으로 제정될 당시와 비교해 현재의 상황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이 여러 논문에서 밝혀지고 있다.
'동시간 조항'과 '형평의 원칙'은 1949년 이후 미국이 채택한 선거보도의 두 가지 큰 원칙이지만 그 중 '형평의 원칙'은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수정헌법) 1조의 정신에 배치될 뿐 아니라 전파의 희소성에 근거를 둔 이 원칙이 다채널 시대의 개막이라는 미디어 환경 변화로 더 이상 실효성이 없다는 이유로 1987년 폐기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물론 보도에 있어 형평의 정신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은 변화하는 매체환경에 대응하는 면도 있지만 산술적 형평의 원칙적용에 따른 부정적 요소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이기도 하며 언론의 자율적 기능을 통해 질적 형평을 꾀하려는 조치라고도 하겠다. 동등시간의 원칙도 다소 차이가 있지만 형평의 원칙 폐기의 배경과 비슷한 이유로 1959년 미의회가 (통신법) 제 315조를 개정하여 예외조항을 둠으로써 제정 당시의 무조건적 적용에서 선별적 적용으로 많이 완화되었다.
FCC 규정에는 후보자의 방송노출이 8초 이상 초과하게 되면 동등시간 원칙을 적용하게 되는데 (1) 성실한 뉴스, (2) 성실한 인터뷰, (3) 성실한 다큐멘터리, (4) 성실한 현장보도 등은 원칙에서 제외시켰다. 여기서 '성실'하다는 것은 정규 프로그램으로서 정치적 편파성이 없는 프로그램을 말한다. 따라서 전형적인 아침 뉴스 프로그램인 NBC의 (Today), ABC의 (Good Morning America)와 같은 프로그램과 (Meet the Press)와 같은 전통적인 뉴스 프로그램은 이 원칙에 구애받지 않는다. (Donahue Show)도 1980년에는 FCC가 순수한 프로그램으로 인정하지 않았으나 1984년에는 순수한 프로그램으로 인정해 동등시간 조항의 예외로 인정되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방송사의 자율 폭은 상당히 커졌다. 언론인의 자율성과 전문성에 근거를 둔 이러한 법 개정은 언론자유에 대한 온 국민의 지지와 언론에 대한 굳은 신뢰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 나라 방송은 짧은 기간에 많은 정치적 격변기를 거치면서 기형적으로 성장했고 과거의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미국과는 사정이 다르다고 하겠다. 그러나 동등시간의 원칙만을 무조건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실제적으로 불합리한 것이다. 우리 사회의 일부에서는 모든 정당과 후보자에게 동등시간 원칙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국민적 지지가 극히 미미한 정당이나 무명의 후보자에게까지 이 원칙을 적용하는 것은 객관적으로 공정한 것이 될 수 없다.
영국의 정치방송은 법적·관행적으로 확립되어 있는데 매년 정당, BBC, IBA대표자들이 모여 시간할당에 관한 협약을 맺고 이를 기준으로 정당에 방송시간을 할당하고 있다. 그러나 92년 총선에서 ITN은 뉴스에서 동등시간 원칙을 따르지 않을 것임을 밝혔고 뉴스전문 채널인 SKY뉴스채널도 ITN의 결정을 따르겠다고 나섰다. 그렇게 해서 92년 영국총선 기간 중 주요 뉴스의 정당별 시간 배정은 보수당이 59%, 노동당이 34.2%, 사회자유민주당이 4.4%로 나타났다. 따라서 동등시간의 원칙이 단순한 산술적인 양적 평등에서 보다 합리적인 질적 균형의 부여를 뜻하는 합당한 기회의 평등에서 그 정신을 찾아야 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국회 교섭단체로 등록된 정당은 상당한 정도의 국민의 대표성을 획득했기 때문에 이를 기준으로 방송시간 할당의 비율을 정하는 것, 또는 이전 선거에서의 득표율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보기에는 일부 국가에서 채택하고 있는 방식대로 득표 비율에 따라 정하고 이를 일관성 있게 지켜나가도록 제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2) 선거보도에서의 화면처리와 내용의 질적 균형
우리 나라는 역대선거를 통하여 방송의 형평 논란이 계속되고 있으며 동등시간 원칙을 근거로 한 양적 균형은 물론 최근에는 화면구성, 편집, 음향처리, 리포트 기사, 앵커 멘트 등 질적 균형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16)
취재와 보도는 필연적으로 무수한 선택 과정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이다. 이러한 선택은 언론보도기관에 종사하는 기자, 카메라맨, 편집자들의 가치관, 이데올로기 심지어는 보도 당사자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좌우될 수 있다. 언론이 투표결과에 미치는 막대한 영향력을 인식하는 각종 권력 집단들 또한 다각적인 방법으로 언론보도를 간섭하려 든다.17) 따라서 엄격한 의미에서 완전한 보도의 균형이란 이론적으로나 논리적으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실제적으로는 불가능할 것이다. 방송은 궁극적으로 불합리한 존재인 인간의 손을 거쳐야 하는 것인데, 이러한 방송의 화면처리에서 매 순간과 낱말 하나까지 현미경적 분석으로 공정성을 평가하는 것이 과연 방송발전과 민주화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선거방송에 관한 방송위원회 기준(안) 중 2-(7)의 내용을 보면 선거에 관련된 모든 프로그램은 카메라 각도와 촬영거리, 화면구성, 음향상태, 조명 등 기술적 측면에서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도록 제작상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도록 요청했다. 기준안이 공정성을 지켜야 한다는 선언적 의미로 해석되지만 클로즈업 컷의 수나 정면이냐 측면이냐 육성을 살렸느냐 살리지 않았느냐 하는 것으로 기술적 공정성이 보장된다고 단언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것이 필자의 의견이다. 또한 방송은 있는 것을 삭제할 수는 있어도 없는 것을 만들 수는 없으며, 카메라맨이라는 직업의 속성상 좋은 그림을 의도적으로 외면한다든지 조명을 의도적으로 불완전하게 한다는 것은 직업 윤리상 있을 수 없으며 거의 발생하지 않는 예외적인 사건이다. 아무리 훌륭한 화면처리 기준을 마련해서 일률적으로 적용시켜도 촬영에는 현장의 조건이라든가, 촬영대상 인물의 특징, 분위기에 따라서 여러 가지 변수가 작용하기 마련이며 후보자의 이미지 형성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물론 편집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왜곡시킬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현재의 방송사 메커니즘과 종사자들의 구성, 그리고 의식구조를 본다면 과거와 같이 일부 의도적이고 조직적인 방식의 조작은 불가능할 것이다.
대통령의 민자당 탈당과 중립 내각 출범으로 정부가 드러내 놓고 특정 후보를 편들 이유가 없어졌고 논리상 여당이 존재하지 않게 된 것도 조직적인 편파방송의 여지를 축소 시켰다. 또 방송사들도 수년 동안의 자정운동이나 시청자 감시기능의 강화에 의해 옛날처럼 노골적으로 편파방송을 획책할 형편도 아니다.18)
정치구조상의 변화와 방송인들의 노력 못지않게 중요한 또 다른 외형적 변화는 시청자들의 의식수준이 무척 높아졌다는 점이다. 수많은 시청자 단체들의 모니터보고서도 방송인에게는 좋은 자극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방송환경의 변화는 선거보도의 공정성 확보에 긍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방송은 궁극적으로 방송 종사자의 손에 의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방송 종사자들의 자율성과 전문성에 기대할 수밖에 없으며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서 민주적 정치문화가 향상되어야만 선거방송의 공정성도 그 만큼 향상될 것이다.
3) 연예인 입후보자들의 방송출연 문제
92년 14대 국회의원선거에는 역대 선거에 비해 방송에 출연중인 연예인이 정당의 공천으로 입후보해서 논란이 일었다. 연예인 입후보자가 드라마나 쇼 또는 일반 정보 프로그램에 계속 출연하는 것은 그렇지 못한 상대 입후보자에 비해 유리한 지위를 얻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동등시간의 원칙에 의해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과 연예인의 방송출연은 직업상의 활동이며 방송의 중단은 시청자서비스 측면에서 옳지 않다는 의견이 대립되었다.
방송위원회의 결정은 대본에 의해 출연하는 드라마의 경우와 특정인의 주관이 애드리브를 통해 나타날 수 있는 시사·오락 프로그램의 진행을 구분해 방송 출연자의 선정은 PD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해서 SBS의 (현장 쇼 주부만세)의 MC 이주일 씨와 KBS-R의 (황인용-강부자 쇼)의 공동 MC인 강부자 씨는 출연이 금지되었고 한편 MBC-TV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에 출연중이었던 이순재 씨와 (전원일기)의 최불암 씨는 계속 출연할 수 있게 되었다. 연예인의 방송활동이 직업상의 행위임에는 틀림없지만 본인의 적극적인 의사로 출마하여 상대 정치인과 겨룰 때에는 그는 이미 연예인이 아니라 여러 후보와 경쟁하는 정치인의 입장에 더 가깝다고 보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따라서 선거운동 기간 중 연예인 입후보자들의 방송활동은 경쟁후보에의 선거운동, 특히 방송을 통한 선거운동의 기회균등 또는 형평성 원칙에 위배된다.
미국의 경우 76년 예비선거운동 기간 중 레이건 후보가 예전에 출연한 영화의 방영을 금지시킨 FCC의 결정은 상대후보에게도 동등한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원칙에 근거를 둔 것이다. 지금은 FCC의 이 조항이 개정되어 후보자격을 얻기 전에 촬영되거나 만들어진 영화, 드라마를 재방송할 경우는 방송을 허용하고 있다.19) 규정이 완화되었다고는 하지만 후보자격을 얻기 전에 제작되었다는 것과 재방송의 허용이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또한 미국과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는 우리 나라의 매체환경도 고려해야 한다.
한 지역에서 평균 30여개의 채널을 시청할 수 있는 미국에서는 특별한 경우 이외에는, 특히 재방송 영화일 경우 그 시청점유율은 미미한 것이다. 일본의 경우도 시청점유율 1위 프로그램과 10위 프로그램의 차이는 10% 내외에 그치고 있으나 우리 나라는 그 차이가 20∼30%가 될 정도로 인기 프로그램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20) 일본의 경우도 70년대 이후 차츰 수용자 중심의 시대가 이루어지면서 1위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분산되기 시작하여 70년대 중반 30%대에서 82년에는 20%대로 낮아졌다.
방송 프로그램의 시청행태에 있어 수용자의 취향에 따라 다양화가 나타난다고 하겠다.21) 그러나 아직도 우리 나라는 그 차이가 심할 경우 30%가 되는 경우도 있으며 인기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의 편향성이 대단히 크다는 점을 두고 볼 때 그 만큼 한 프로그램의 영향력도 크고 절대적이다.
이순재 후보가 출연했던 주말연속극 (사랑이 뭐길래)의 시청률은 우리 나라 시청자의 시청행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즉, 92년 1월부터 5월까지 평균 가구 시청률은 무려 57.9%이며 점유율은 78%나 됐다. 이것을 채널별로 표시하면 (표 1)과 같다. (미디어서비스코리아(MSK)의 조사에 따름) 이토록 높은 점유율을 가진 프로그램에 출연한 사람이 후보가 되었을 때 얻는 반사이익이 막대하리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순재 씨는 당선 후 신문 인터뷰에서 "TV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 덕을 보기는 했지만 그로 인해 대세가 바뀌진 않았다"고 말했다.22) 그러나 단서를 붙이긴 했으나 이 후보는 드라마 덕을 보았다는 것을 인정했다.
매스미디어, 특히 TV 매체에는 권위부여 및 공신력 제고 기능이 있다. 또한 TV에 자주 출연하는 탤런트나 유명인사를 만나면 친밀감을 느끼며 때로는 상대방도 나를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아는 척하는 경우도 있다. TV드라마는 의사환경을 만들어 드라마의 내용과 현실을 동일시하게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드라마 주인공이 선거후보로 나선다면 이미 경쟁 후보보다 많은 것을 불로 소득하는 것이므로 불공정한 경쟁이 되기 쉽다. 주정민 씨는 "텔레비전 드라마의 이미지와 유권자의 투표행위에 관한 연구"에서 이순재 씨에게는 투표한 113명 중 58명은 실제인물과 텔레비전 드라마의 주인공 이미지 차이값의 정도가 제일 작은 값대에 속해 있었고 두 이미지 차이값이 중간 정도인 값대에 34명, 차이값이 제일 큰 값대에 21명이 분포되어 있다고 밝히고 있다.23) 이러한 분포로 보아 두 이미지의 차이가 작은 유권자일수록 이순재 씨에게 많이 투표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많은 유권자가 실제인물과 텔레비전 드라마의 주인공을 잘 구분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것이 투표행위에 영향을 끼쳤다는 추론이 가능한데, 이는 국가정책을 결정하는 막중한 인물을 뽑는 데서 국민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역작용을 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 나라 TV드라마 제작과정을 살펴본다면 선거 기간 중에 방영되는 드라마에 입후보자의 출연이 내포하고 있는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제작 방영되는 대부분의 드라마는 방영진에 전작품이 완성되는 전작제도가 아니라 방영도중에 시청자의 반응에 따라 줄거리를 바꾸기도 하고 주인공의 역할을 확대하고 축소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주인공의 이미지를 바꿀 수 있기 때문에 각본에 의한 연기에 불과하기 때문에 선거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논리는 재고해야 타당하리라고 본다. 선거 기간중의 방송출연 문제와는 별도로 연예인 정치인이 뉴스나 시사프로그램 이외에 드라마, 쇼의 사회자로 고정 출연하는 문제도 여러 각도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방송법)에도 명시되어 있듯이 방송은 중립적이고 독립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방송사는 국회의 감사를 받아야 하고, 연예인 출신 정치인이 문공위 소속위원으로서 방송사, 특히 KBS에 끼칠 영향은 현실적으로 무시할 수 없다. 5공 때 여당의 연예인 출신인 한 전국구 의원이 TV드라마에 계속 출연했는데 방송사나 연출자, 간부들이 그를 순수한 탤런트로만 대우 했다고는 보기 어렵다.
캐나다의 국영방송인 CBC의 방송정책 "정당 또는 압력단체에 소속된 인물의 고용 또는 출연에 관하여" 조항은 다음과 같다.
"CBC는 공정해야 할 뿐만 아니라 공정한 이미지를 추구해야 한다 - 정당 또는 압력단체에 소속된 인물을 고용하려는 계획은 다음과 같은 관리자에게 미리 제출되어야 한다. 즉, 정보 프로그램은 정보 프로그램 국장에게, 다른 프로그램과 서비스는 미디어 부회장에게, RCI의 책임하에 있는 프로그램과 서비스는 RCI관리자에게, 적용의 일관성을 확립하기 위하여 관리자는 관련자들과 충분히 상의해야 한다 - 정당 또는 압력단체에 소속된 인물의 고용은 관련 인물이 정당 또는 압력단체의 직분을 사직하고 적어도 2년 동안 정당 또는 압력단체의 공적인 활동을 삼가고 있는 경우 인정될 수 있다."24)
이 규정에 의하면 정당의 공천을 받아 입후보한 연예인은 방송에 출연할 수 없으며 그 후 2년 동안도 방송의 공정한 이미지에 해가 되지 않도록 금하고 있다.
영국 BBC가 93년에 발간한 Producer's Guideline 17장 "선거방송"의 3. 규칙을 보면 "BBC의 방침은 우리가 모든 후보자들을 알지 못하고 따라서 모든 후보자들을 공정하게 다룰 수 없을 때, 어떤 특정 후보자에게 유리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5·11 '선거기간' 중 후보자인 배우, 음악가, 가수가 출연할 수 있는가? 작가인 후보자도 그의 작품을 방송 또는 토론할 수 있는가? 방송이 '선거기간' 전에 편성되었다면 가능하다. 후보자인 전문방송인도 그들이 어떤 역에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않고 대안이 없지 않다면 선거기간 시작 후에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했다. 1989년 6월 18일의 유럽의회 선거방송에 대한 CSA(시청각최고회의)의 권고를 보면 국영 프로그램 제작사의 출연자, 허가되었거나 양도된 시청각 커뮤니케이션 서비스의 종사자로서 선거후보자 명단에 오른 사람은 공식적 캠페인 기간에는 직업상 관련된 모든 방송출연과 전파상 의사표면을 금하고 있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선거 기간 중 연예인 입후보자의 방송출연은 물론 연예인 정치인의 드라마 배역과 프로그램의 고정출연은 방송사의 중립성, 공정성 이미지 추구라는 측면에서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4) 후보자 TV 토론
빌 클린턴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극적인 승리로 끝난 '92년 미국 대통령선거 과정에 있었던 세 차례 부시후보와 클린턴 후보간의 TV 토론은 미국적 민주주의뿐 아니라 전세계, 특히 대통령선거를 눈 앞에 두고 있는 우리 나라 국민들에게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후보자와 유권자의 직접 접촉을 통한 선거운동은 인구증가와 인간 주거 영역의 확대, 교통문제 등으로 한계가 있으며 특히 청중동원을 위한 막대한 선거 자금의 소요와 탈법·위법적 행태로 부작용을 빚고 있는 우리 나라의 경우는 접촉 효과가 높은 TV매체를 이용하는 선거운동이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사회경제적으로 많은 악영향을 끼쳤던 거리의 정치를 돈 안 들이고 차분한 안방정치로 끌어들이는 것도 민주주의를 한 걸음 발전시키는 것이 될 것이다.
문자화된 언어에 의존하는 인쇄매체가 대중통신의 주종을 이루던 50년대까지도 대중연설은 정치활동에서 불가분의 중요성을 가졌다. 그러나 TV가 보도매체의 주종적 역할을 하게 된 지금의 매체환경에서는 '언어'와 '사고'가 완전히 이혼해 버린 상태라는 이론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25) 따라서 변화된 매체환경에 맞는 정치적 표현과 유세방법이 요구되며, 이러한 매체특성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TV 토론이 관심을 끌고 있다. 정당이나 후보자들이 정견이나 정책을 발표해도 유권자들이 직접 그 내용을 그대로 접하는 기회는 많지 않다. 대부분 매체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접하게 되는데 이런 경우 정치인들의 말이 보도인들의 표현과 의견으로 재처리되는 것이다. 특히 보도에 있어 보도인들의 정치 중개역할이 과거보다 커지는 추세에 따라 정치인들의 소리가 유권자들에게 직접 전해지는 양과 기회가 축소되었다. 이런 여과과정에서 생기는 내용축소, 왜곡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TV 토론이나 대담을 통해 유권자에게 직접 후보자의 정견과 소속 정당의 정강정책을 전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TV 토론은 이러한 장점 때문에 미국, 일본, 프랑스 등 선진국에서 행해지고 있으나 TV 토론이 토론내용보다 이미지 형성에 치우친다든지 또는 상대방의 실수만을 기다리는 제도라는 비판 등 허구창출의 역기능도 많이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경우는 선거방송에 대한 시청자들의 불신도 있고 정치 자체에 대한 불신감과 냉소주의가 팽배해 있어 이를 해소하는 데에도 기여할 것이다.
보도에 의하면 미국 가정에서는 유권자가 아닌 청소년들이 부모와 함께 TV 토론을 시청한 후 토론을 하기도 하고 일부 중고등학교에서는 시청소감을 숙제로 제출케 하는 등 국민에 대한 민주교육의 기회로 삼고 있다. 무엇보다도 TV 토론은 유권자들에게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인지적·감성적 정보를 습득케 해준다. 11월 4일 개정된 (대통령선거법) 제 44조는 3회에 걸쳐 120분씩 TV토론을 할 수 있도록 법적 뒷받침을 하고 있다. 개정 전에는 1회 토론시간이 40분을 넘지 못하게 했으나 이번 법개정에서는 3당의 합의로 120분으로 대폭 늘려 TV 토론에 대한 정치권의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TV개최는 강제로 되는 것이 아니라 정당과 후보자간에 합의가 있어야 하고 방송사측에서도 기술적 준비를 완비해야 한다. 특히 후보토론을 한다고 결정했다고 해도 세부사항을 놓고 얼마든지 갈등이 있을 수 있어 후보토론이나 방송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더라도 이번 대선에 성사될 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다만 실무적 측면에서 다른 나라의 선거방송을 간략히 정리하면 (표 2)와 같다.
92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보였듯이 TV 토론의 위력과 영향을 의식한 각 후보들이 서로 자신에게 유리한 토론방식, 시기, 규모 등을 고집해 지난 92년 선거에서도 87년 대선 때처럼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해 TV 토론은 성사되지 않았다. 일본도 정당간의 이해의 대립으로 TV 토론이 그 동안 세 차례밖에 성사되지 못했다. 60년 처음 시행한 후 63년에 한 차례 더 있은 후 27년간 중단되었다가 자민당의 적극적인 제안으로 90년에 다시 부활되었다. TV 토론은 대통령 중심제와 공화·민주 양당제도가 근간을 이루는 나라에 적합하며 다분히 미국적인 것이다. 미국의 TV 토론도 56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아들라이 스티븐슨이 제안했지만 성사되지 않은 예가 있으며 동등시간의 원칙, 주최권 등 법적인 문제와 방법상의 이견 등 많은 우여곡절 끝에 오늘과 같은 TV 토론의 전통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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