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선거방송의 쟁점과 과제
정창기(KBS 정책연구실장)
1. TV 시대의 선거
우리 나라에 텔레비전 방송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956년 6월로 KORCAD(한국 RCA 배급회사)가 하루에 2시간씩 정규방송을 했으나 그때 우리 나라 TV수상기는 300여대에 불과했다. 따라서 그 사회·문화적 영향력이 미미했다. 거기에다 산업의 미성숙으로 1957년 경영난에 부딪친 KORCAD를 (한국일보)가 인수하여 대한방송주식회사(DBS)로 개편하고 1959년 2월 화재로 문을 닫을 때까지 3시간씩 저녁방송을 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텔레비전 방송의 시작은 1961년 12월 31일 KBS-TV개국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KBS-TV 개국 당시 TV수상기 보급대수는 2만여대에 지나지 않았으나 그 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여 67년에는 7만 3천대, 70년에는 38만대, 75년에는 200만대를 넘었고 94년 1월 현재 1,070만대가 KBS에 등록되어 있다((KBS통계편람 1982∼1992)(1993)와 KBS업무용 자료 인용).
그러나 미등록대수를 계산에 넣으면 우리나라 1,306만 가구(내무부 행정구역 및 인구현황, 1993. 3. 1)가 거의 TV를 보유하고 있다고 추정된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990년 12월 현재 전가구의 97.2%가 TV를 보유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한국의 사회지표, 1993. 12. 30). 따라서 현재의 1,306만 가구에 97.2%만 하더라도 TV를 소유한 가구는 1,270여만 가구에 이른다. 1993년 11월에 실시한 '93 전국 TV시청행태 및 의견 조사에 따르면 1가구 2대 이상의 TV보유가구가 49.4%에 이르고 있다. TV시청시간도 평일 3시간 13분, 일요일 5시간 43분에 이르러 TV시대를 실감하게 만든다. 그러나 비약적인 팽창에도 불구하고 TV가 정치를 위해 얼마나 유용하게 활용되었느냐 하는 점은 여전히 회의적이다. 전문성이나 공정성이 결여됐다는 방송사 내외의 비판은 고사하고라도 국정을 총결산하는 선거에 대해서도 시간배정과 선거방송의 다양한 장르개발에도 미흡했다고 하겠다. 선거의 목적이 정치과정의 민주화를 이루는 것이라면 광범위하고 활발한 여론수렴과 형성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역할은 무엇보다도 매스미디어, 특히 TV에 의해서 원활히 수행될 수 있으며 미국, 일본을 비롯한 유럽의 정치 선진국의 예에서 입증되고 있다.
국내의 언론이 1992년 미국의 대통령 선거를 보도하는데 있어 '최후의 승부처', '변수'라는 어휘를 동원해 방송의 위력을 강조하기도 했다. 즉, 궁지에 몰린 공화당 부시후보의 선거 대책본부는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그 동안 꺼렸던 TV토론에 응해 승부를 낸다는 전략을 두고 한 말이다. 선진 각국은 방송매체와 선거를 효율적으로 결합해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있다. 후보들도 방송은 물론 포스터, 광고, 뉴미디어 등을 선거 운동에 총동원하여 유권자들과의 거리를 좁혀 나간다. 그렇다고 유권자들과 직접 접촉을 회피하는 것도 아니다.
60년 대선에서 닉슨 후보는 면대면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해 51개 주 모두와 188개 시를 방문하여 65,500마일의 선거운동을 했다. 150번에 이르는 주요연설을 했고, 유권자 1,000만명 가량이 닉슨 후보를 직접 보았다. 그러나 TV는 여러 선거운동 수단에 견주어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쳐 TV토론에서 케네디 후보에게 패한 닉슨은 몰락했을 정도이다. TV의 영향력이 수 천번의 연설이나 유세보다 더 강력하다는 것이 입증된 것이다. 이후 후보 토론이 정규화 하였고 92년 10월 19일 미시간 주립대학에서 있었던 TV토론을 끝으로 마무리 지어진 대통령 토론 3회, 부통령 토론 1회 등 네 차례에 걸친 TV토론은 매번 7,000만-8,000만의 유권자가 시청했고 유권자의 90%가 대통령 토론 세번 중 최소한 한번은 이를 지켜본 것으로 보도됐다.1) 유권자들은 토론을 통해 후보들의 국가운영 전반에 관한 소신을 확인할 수 있었고 경쟁자의 반론을 통해 후보들이 내세운 정책의 문제점까지도 즉각 파악해서 후보간의 정책차이를 비교할 수 있었다. 많은 유권자들이 자녀들과 함께 TV토론을 시청해 투표권이 없는 어린이들에까지도 미국의 민주주의 제도를 이해 시키고 정치의식을 높이는데 유익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본의 경우도 선거방송에 대한 시청자의 반응은 대단히 높은 편이다. 90년 일본의 5당 당수 공개토론회는 생방송과 녹화방송을 포함해 43.8%의 시청률을 기록해 선거방송에 대한 시청자의 반응이 얼마나 높은 지 알 수 있게 한다.2) 한국에서도 선거에 미치는 텔레비전의 영향력이 큰 것으로 평가된다. "커뮤니케이션과 투표행태"(안광식·최선열, (신문학보) 제 25호, 1990년)의 연구에 의하면 제 13대 대통령선거에 관한 정보통로로 텔레비전 의존도가 가장 높았으며 (40.6%) 당선자인 노태우 후보자를 지지한 사람들의 63.1%는 텔레비전을 통해 선거에 관한 정보를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조사인 (선거와 언론)(제 3회 미디어의 영향과 신뢰도 조사 1988, 한국언론연구원)에 따르면 대통령선거에서 선거에 관한 주된 정보원으로 43.2%가 텔레비전을 들었다. 미국의 경우 텔레비전이 대통령 선거 캠페인 기간을 단축시키고 유권자들이 후보와 접촉할 기회를 줄 뿐 아니라 정당의 역할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등 정치행태 전반에 걸쳐 영향을 끼쳤다.3) 60년대에 텔레비전이 예비선거를 소상하게 보도함으로써 예비선거를 "민주적인 대통령후보 지명 방식"으로 정착시켰으며 68년 민주당의 험프리 후보지명 이후 국민들 사이에 선거개혁에 대한 요구를 불러일으키는데 텔레비전이 커다란 공헌을 했다.4)
이제 우리 나라도 많은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대중집회를 통한 선거 운동 방식을 지양할 때가 되었다. 87년 대선 때 있었던 대통령 후보간의 무리한 청중 모으기와 세과시는 막대한 금전살포와 선물공세로 대부분 선거법을 위반했으며, 이러한 선거문화는 사회전체에 걸쳐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았다.
앞에서 살핀 대로 선거에서 방송이 차지하는 역할에 비추어 거의 모든 유권자가 동시에 접할 수 있는 TV를 이용한 선거운동은 어떠한 방법보다 효과적이라 하겠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현행 대통령선거법과 국회의원선거법은 선거에 방송이용을 오히려 억제하고 있어 국민과 방송사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게 되었다. 정치방송 광고도 더욱 발전되어야겠다. 방송이 선거에 더 많이 활용되기 위해서는 광고가 적극적으로 이용되어야 한다. 선거방송의 억제는 미디어 선거시대의 대세를 거역하는 것으로 이에 대한 재검토가 절실하다.5) 다만 광고비 부담으로 정당이나 방송사가 피해를 입지 않도록 별도의 대책이 필요하다.
그 동안 있었던 선거방송에 대한 논의가 대부분 방송의 공정성 여부에 많은 비중이 두어져 공정성의 제도적 향상에 이바지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선거방송을 직접 담당하는 방송사와 방송인의 자율성은 전혀 고려대상이 되고 있지 않은 채 논의되어 왔다. 당사자의 입장이 배려되지 않고 단지 당위적 원론만 반복한다면 방송발전에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 할 것이다. 따라서 선거에 방송이용을 확대하는 한편 방송사와 방송인의 입장에서 어떻게 선거방송을 해야 하는가를 실무적 입장에서 검토할 때가 왔다.
2. 한국의 선거방송
우리 나라에서 대통령 선거에 방송이 활용된 것은 63년도로 제 5대 대통령선거 때 라디오가 최초로 사용되었으며 텔레비전은 71년 제 7대 대통령선거 때 처음으로 시도되었다. 또 대통령 입후보자의 지지연설이 방송을 통해 나간 것도 제 7대 대통령선거 때였다. 이전까지 라디오나 텔레비전을 이용한 대통령선거가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대통령 선거법상 방송시설 이용에 관한 명문 규정이 뚜렷하지 않았을 뿐더러 수상기의 보급이 미미하여 전파의 영향력이, 그리 크게 작용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5·16혁명 후 제 4공화국 수립을 위한 대통령 직선제의 헌법개정이 있을 때 대통령 선거법도 개정되어 선거법상 중앙선거 관리위원회가 정하는 바에 의하여 방송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대통령선거법 제 50조 1항)고 규정하여 방송을 통한 정견 발표의 길이 마련된 것이다.
63년 9월 23일 당시 민주공화당 박정희 후보는 중앙방송 제 1라디오 (710KHZ)를 통해 10분간 정견을 발표하여 우리 나라 대통령 선거에 처음으로 방송을 이용한 '정견전파'를 내보냈다. 5대 대통령선거(63. 10. 15)때 정당 또는 후보자 또는 그가 지명한 연설원이 나와 후보자의 정견, 소속 정당의 정강정책, 선거 강령 등을 제한된 시간 안에 행하는 방송도 있었고, 정당이 1회 10분씩 5회 이내에서 방송 시설을 이용하여 정당의 '정강정책, 선거 강령, 기호 및 후보자의 성명 및 경력, 기호 필요한 사항을 방송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정견방송은 제 8대 선거(71. 4. 27)까지 지속되어 왔으며 유신체제가 들어서고 무너질 때까지의 기간에 실시된 제 7대 선거(72. 12. 27)에서 11대(80. 8. 27)까지는 선거법에서 이 규정이 삭제되었다. 그리고 제 12대 대통령 선거(81. 2. 25) 때부터는 라디오와 텔레비전에 각각 3회씩, 1회 30분 이내에서 연설을 허용하였다. 또한 대통령 후보의 경력에 후보자의·성명, 기호, 소속 정당, 기타 주요한 경력 사항 방송을 무료로 시행하도록 방송사에 의무화하였다.6) 또한 연설원을 통한 방송연설도 할 수 있도록 했는데 후보자가 지명한 2인의 연설원은 라디오와 TV 각각 1회씩 참석하여 1인당 30분 이내에서 연설할 수 있으며 이에 소요되는 경비는 국고에서 부담하도록 했다.7)
민정당의 전두환 후보, 민한당의 유치송 후보, 국민당의 김종철 후보가 대통령 후보 TV 연설을 했고, 민정당 연설원은 시인 서정주 씨와 이종찬 씨가 나섰다. 당시는 통일주체국민회의 의원들이 선출하는 이른바 '체육관 선거'에서 TV 선거 방송이 별로 시청자들에게 관심을 끌지 못했으며 방송형식도 파란색의 배경 앞에 앉아 30분간 연설해 단조로웠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연설원들이 TV 연설에 익숙하지 않아 주로 원고에 의존해 읽는 형편이어서 TV 연설의 모양만 갖추었을 뿐 방송의 효과도 크지 않았던 것으로 평가된다.8)
13대 대통령 선거는 직선제 개헌을 통해 1971년 이후 16년만에 실시된 직접선거인 만큼 국민의 관심과 후보자들의 열기는 대단했다. 특히 당시 민정당의 대표의원 노태우 씨의 6·29선언이 발표되고, 또 선거일을 한달 앞두고 야당의 분당으로 김영삼, 김대중 씨 등이 선거전에 뛰어드는 한편 공화당의 창당으로 김종필 씨도 입후보함에 따라 예측불허의 4파전으로 선거 열기는 고조에 달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권자가 특정후보를 결정하기까지는 과연 TV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이에 관해 안광식·최선열 씨의 논문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선거운동 기간 중에는 한 사회체계에 매스미디어로부터 엄청난 양의 정보가 유입되는데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확실한 결정(투표결과)이 나오게 되어 있다. 효과연구의 관점에서 보면 일정한 기간의 경과, 투표자의 정보추구 또는 습득 그리고 확실한 측정이 가능한 종속변인 등 완벽한 커뮤니케이션 연구의 상황이 전개되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의 커뮤니케이션 상황에서 투표의사 결정시기는 선거의 상황에 따라 그 분포가 달라질 수 있는 변인이다. 13대 대통령 선거는 의사 결정이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볼 수 있다. 우선 경쟁후보의 수가 많았으며 정당선호와 같은 속성이 주요하게 작용하지 않는 우리 나라의 현실에서 두드러지게 중요한 이슈가 부각되지 못해 관심이 분산되었고, 개인적인 속성들에 있어 김대중 후보와 김영삼 후보간의 다소의 공통점, 노태우 후보와 김종필 후보간의 다소의 공통점으로 인해 네 명의 후보를 분명하게 판별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13대 대통령 선거는 투표의사 결정시기가 중요한 상황 변인이 될 수 있음을 예측할 수 있다. 이와 관련, 위의 안광식·최선열 논문에 따르면 선거에 관한 정보통로로 텔레비전의 의존도가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40.6%) 아주 늦게 투표의사를 결정한 사람들이 텔레비전 의존도가 가장 높은 것(53.6%)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에서는 또 유권자들이 지지한 후보자의 프로그램을 다른 후보자들의 프로그램보다 휠씬 많이 시청하는 선택적 노출 경향이 뚜렷이 나타났으며 TV정견 발표와 후보자들의 정치적 소신을 알게 한다는 결과가 나타났다.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그리고 정견발표를 보고 나서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자들의 이미지에 변화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정견발표를 보고 나서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자들은 더 좋게 그리고 다른 후보자들은 더 싫게 인지하게 되었다고 한다.
13대 대통령선거 기간에 TV의 정견발표와 관훈클럽의 토론회 TV방송을 전혀 보지 않은 사람은 각각 조사자의 22, 23%에 지나지 않아 대부분의 사람이 이 방송을 본 것으로 나타났고 두 프로그램 모두 전체적으로 강화 효과가 가장 컸다. 또한 후보자를 결정하는데 도움이 되었다는 사람이 1/3이나 되어 이 방송이 유권자들의 투표행위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조사되었다. TV가 선거에 이용되는 빈도가 늘어날수록 투표행태에 끼치는 영향이 클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정당과 후보들이 TV매체에 의존해 이미지를 형성하는 패턴만 보아도 TV는 향후 정치 전반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다.
3. 선거방송의 원칙과 실제
세계 선진각국은 공정하고 균형 있는 선거방송의 편성과 보도로 사회적 안정을 실현하는데 많은 성과를 올렸다. 우선 법적인 면에서 그런 성과가 두드러져 미국은 이미 1934년 (통신법)(COMMUNICAT10N ACT)을 제정하였고, 영국은 1935년 정치방송제도를 도입하여 공정방송의 기초를 닦았다. 헌법은 물론 (방송법), (정보 통신법), (선거법) 등 많은 관련법으로 방송의 공정성을 보장하고 있으며 방송사는 이에 따라 자유로운 상태에서 편성과 제작에 노력한다. 선거관련 보도는 공정성 확보가 쟁점이었는데 이는 대체로 지면, 화면, 시간 등 양적인 면에서 균등했는가 하는 것이 중심된 과제였다. 언론자유의 제도적 발전도 공정보도에 없어서는 안될 요소로 미국은 (수정헌법) 제 1조에 명시된 언론 자유조항으로 공정한 언론의 기능을 보장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방송사는 (수정헌법) 제 1조를 들어 공정원리가 위헌임을 끊임없이 제기한 바 있다. 또한 비제도권적 정당이나 후보를 의도적으로 배제하지 않고 전국방송망을 통해 전달되도록 보장한다. 선거방송에 직접 영향을 주는 법은 (커뮤니케이션 법)이다. 공정보도를 위한 언론인, 학계, 시민단체, 노조 등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연방통신위원회는 74년 '공정방송에 관한 보고서'를 만들어 선거방송의 공정성을 새삼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이른바 공정원리(fairness doctrine)는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주요 국가에서 통용되는 보편적인 개념으로 이를 어길 때에는 심각한 정치문제로 비화되기도 한다. 34년에 제정된 '공정원리'를 보장하는 조항으로 연방통신위원회가 형평원리를 제도화함으로써 미국 정치와 선거문화의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집권 공화당이 행정기구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어 선거철만 되면 정부기관은 공화당에 불리한 정보를 차단하거나 유리한 정보를 조작하는 등 정보왜곡을 빚고 있다. 방송사도 나름대로 원칙을 세워 선거방송을 대비하였다. 비근한 예로 미국방송협회는 (정치방송문답)이라는 지침서를 발간해 현재 20판이나 거듭하면서 방송인들에게 큰 지침을 주고 있다.9)
일본의 (방송법)제 1조 제 2항에 "불편부당하고 진실해야 하며 자율성과 표현의 자유는 보장된다"는 규정을 두어 선거방송에도 이 조항을 엄격히 적용하고 있다. NHK는 (국내프로그램기준)을 만들어 정치보도의 중립성을 지향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정치문제는 공정해야 하며(제 4항 1), 공직선거와 관련된 정견방송과 경력방송에서 후보자에게 평등한 기회를 주어야 한다(제 4항 2)고 되어 있다. 특히 NHK의 공정방송제도가 완비된 80년대 이후 선거방송은 문자 그대로 공정하였다. 영국의 (방송법)을 보면 불편부당성과 독립성이 선거방송의 길잡이 노릇을 한다. 프랑스에서는 1986년 개정된 선거법 중 방송에 관련된 제 16조에 '정직성과 다원주의'를 기본원칙으로 삼고 있다.
선거방송에 공정원리를 적용할 수 있는 범위를 보면, 첫째, 특정후보나 정당을 직접 지지하지는 않더라도 간접적·우회적 지지를 분명히 할 경우 상대후보에게도 동등한 기회를 주어 이를 방송한다. 둘째, 선거방송에서 당면한 문제를 선정해 그 중 논란이 생길 여지가 있는 것에 대해 공정원리를 적용한다. 셋째, 선거쟁점을 보도할 때 이견을 가진 사람에게 반론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10)
보도원리 중 비교적 체계적으로 구성된 것이 공정원리로 서구사회의 합리적 사고와 경쟁자도 집권할 수 있다는 정치논리에 뿌리를 둔 것이다. 여기서 공정원리의 특성과 문제점을 살펴보기로 한다. 공정원리는 미국의 (정보 통신법) 제 312조와 제 315조를 기초로 발전된 개념이다. 이 법에 따르면 "법적 자격을 갖추고 연방공직에 출마한 후보가 방송시설의 합당한 이용 또는 광고를 위한 시간판매를 방송사에 요구하면 이를 의도적이거나 반복적으로 거부하지 못한다"((통신법) 제 312조 a항). 같은 법 제 315조 a항에 "법적 자격을 갖춘 후보가 방송시설을 이용하는 경우 방송사는 모든 후보에게 동등한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규정하여 공정방송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였다.
(정보 통신법) 정신에 따라 발전된 공정원리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요소를 포함한다. (1) 기회동등의 원리 (2) 시간동등의 원리 (3) 내용상 대우동등의 원리 (4) 반박할 권리 (the right of rebuttal) 이 중 반박권은 국내법에 아직 도입되지 않은 개념으로 방송사가 내보낸 방송내용이 개인이나 집단에 대해 인신공격을 했다고 인정되는 경우 해당 방송사는 일주일 내에 공격을 당한 측에 반박 또는 반론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좁은 의미에서 반박권은 흔히 '인신공격적 내용에 대한 반박기회의 부여 원칙'(personal attack rule)으로 통용되기도 한다. (정보 통신법) 제 312조와 제 315조를 위반한 방송사에 벌금은 물론이고 면허를 취소할 수 있게 강제규정을 두고 있어 실효성이 있다.
미국의 보도매체는 일방적으로 한쪽을 지지하기보다는 정세에 따라 다르게 보도한다. 92년 선거에서는 전반적으로 클린턴 민주당 후보에게 유리하게 보도했다. 독립된 연구 기관인 '언론과 공공문제연구소'는 예비선거 이후 3대 텔레비전뉴스의 앵커가 56%대 34%로 클린턴 후보를 더 많이 인터뷰하고, 보도시간도 더 길게 잡고 있다는 분석결과를 내놓았다. 68년만 해도 후보자 육성은 평균 42.2초였으나 88년 9.8초로 끊어지고 92년 대선에서는 평균 7.3초를 할당하고 있으나 적어도 30초까지 늘려야 시청자들에게 후보자의 본뜻을 전달할 수 있다는 평가도 있다. 방송사가 후보 육성을 8초 이내로 제한 시키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공정원리의 규제를 받는 시간이 8초에서부터이기 때문이어서 이러한 기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양당정치에 대한 국민적 실망과 무관심으로 선거방송시간은 매년 대폭 줄어들었다. 더욱이 심각한 경제불황으로 인해 대기업은 시청자가 별로 없는 선거방송 시간을 선호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방송사는 보도 프로그램의 경우 10분 안팎으로 선거보도를 줄이고 있는 추세이다.
영국의 경우 (방송법) 및 (국민대표선거법)에 따라 정치방송도 일반방송과 마찬가지로 '불편부당'(impartiality)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방송법)에 따르면 "뉴스는 정치적 논쟁이나 공공정책에 대해서 불편부당해야 한다". (방송법)의 취지에 따라 편파성을 막기 위해 방송사는 투표 3일전 정치방송을 중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영국의 정치방송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정당 정치방송이며 다른 하나는 정당 선거 방송인데 전자는 정당의 정책을 소개할 목적으로 방송사가 정당에 시간을 주는 것이며 후자는 선거 유세기간에 각 정당에 이전에 실시된 득표수를 기준으로 방송기회를 주는 것이다.
BBC와 ITN은 정통적으로 집권당, 제 1야당, 제 2야당에 대해 5:5:3으로 기회를 배분하였다. 1952년 실시된 총선에서는 주요정당의 시간배정이 5:5:4가 되어 대체적인 균형을 유지하게 되었다. 총선기간 중 주요뉴스의 정당별 시간배정은 보수당 59%, 사민당 34.2%, 민주당 4.4%로 나타났다.11) 이것으로 정당에 대해서는 시간당 약간씩 차별하면서 불편부당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수정당에게도 시간을 배분해 83년 총선에 50명 이상의 후보를 낸 정당에 5분의 방송시간을 주었다. 92년 실시된 영국 총선 때 그레햄 BBC 뉴스·시사보도국장은 3당의 유세를 똑같이 다룰 것이라 선언하였고 이는 그대로 실현되었다. 20석밖에 안 되는 자민당도 보수·노동당과 거의 비슷한 취급을 받았다. 선거유세가 시작되자 BBC와 ITN은 매일밤 10시 이후 각 당의 주요인물이 나와 현안문제를 10분씩 설명하도록 하여 선거를 정책대결로 이끌었다. 1992년 1월 ITN사는 시간 동등 원칙을 폐기한다고 하여 정치적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이에 따라 ITN은 메이저 보수당 당수를 BBC보다 두 배나 더 많이 화면에 내보내 편파보도라는 항의를 받았다. 그런데 BBC 제 1라디오는 메이저 당수를 평균 22.7초 다룬 데 비해 야당인 키녹 노동당 당수에 관해 24.9초 다뤄 야당에 호의적이었다. 그러나 텔레비전의 경우 보수당 편향이 있어 시청자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이것은 BBC만의 한정된 편파가 아니라 영국사회의 보수화 추세로 보수당 입김이 강해지면서 영국의 방송보도가 대체로 보수에 치우친 결과이기도 하다.
프랑스는 정당, 정치단체, 노조, 사회 단체들이 선거방송에 직접 참여하도록 하는 법과 제도를 시행중이다. '직접 표현의 원칙'은 프랑스 방송의 장점으로 평가된다. 직접표현의 원칙이란 선거기간에 정치단체, 사회단체, 노조 등이 아무런 간섭 없이 법에 따라 방송을 이용하도록 하여 공정성과 정치적 다원주의를 고양하는 것이다. 시간과 기회의 '삼분할 원칙'도 정치 방송의 기준으로 정착되어 특정한 사안에 대한 방송보도나 출연기회를 분배할 때 정부 1/3, 여당 l/3, 야당 1/3로 나눈다. 특정한 정파나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연예인, 스포츠계 인사 등의 방송출연을 규제하는 전통도 확립되었다. 이와 함께 (선거법)의 방송 관련조항 제 6조 제 1항의 규정에 의해 특정한 개인 및 집단의 명예나 신뢰를 손상시키는 내용이 방송될 경우 피해당사자는 방송된 지 9일 이내에 방송사에 반론권을 요구할 수 있다. 요구를 접수한 방송사가 8일이 지나도록 반론권 요구를 거부하거나 침묵하면 법원에 제소하여 반론권 승인 판결이 나면 방송사는 지체 없이 반론할 기회와 시간을 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중요한 점은 텔레비전의 선거방송이 불공정하여 그릇된 결과를 가져왔다고 헌법위원회에 제소하면 심의를 거쳐 무효화된다는 사실이다. 이 만큼 공정보도는 프랑스 방송뿐만 아니라 정치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작용한다.
일본의 (방송법) 제 3조 제 2항에 프로그램은 '정치적으로 공평'해야 한다고 규정했으며 제 45조와 52조에 기회동등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선거운동이 시작되면 방송사는 뉴스보도에서 후보자나 운동원의 얼굴 및 이름을 정면으로 보여주면 안되며 유세장을 비추는 화면에서도 후보자의 모습을 뒤나 옆 모습만 담도록 제한하고 있다. 선거정세 예상보도를 규제하자는 움직임도 있다. 일본 자민당은 '보혁대결', '‥당 우세', '‥후보 유리' 같은 표현이 당락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공직선거법)등 선거정세 보도부분을 개정해 예상보도를 규제하자고 제안하였다. 그러나 방송계의 반발로 제동이 걸린 상태이다. 요약하자면 공정 원리란 경쟁자에게 기회를 균등하게 부여하는 것이며 선거방송으로 인해 아무런 이유없이 비난이나 공격을 받은 당사자에게 합당한 반박권을 인정하는 것까지 포함 한다.
캐나다도 공정보도의 원리를 엄격히 실시하고 있다. 캐나다 공영방송사의 선거방송규칙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12)
캐나다 공영방송의 내규에 따르면 서로 다른 견해가 존재하는 공익문제를 다루는 CBC 프로그램에서는 서로 다른 견해를 공평(equitable)하게 취급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방송되는 정보는 공평하지도 포괄적이지도 않을 것이다. 여기에서 'equitable'이란 견해의 중요성 또는 잠재적 중요성 뿐만 아니라 어떤 견해의 배후에 있는 판단의 비중까지 고려한 공정(fair)과 합리적인(reasonable) 것을 의미한다.
정보프로그램을 다루는 데서는 '균형성'과 공정성'이라는 두 가지 기준이 있다. 하나는 신문사에 관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언론기관으로서의 CBC에 의해서 제공된다. 신문 기자들은 그들 자신의 견해나 태도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직업규범을 적절히 적용함으로써 이러한 견해나 태도가 편견으로 치닫는 것을 방지할 것이다. 직업규범은 보도가 양식 있고 공정하게 되도록 유도하는데 필수적이다. 언론기관으로서 CBC 또한 프로그램을 공정하며 균형 있게 만들어야 한다. 상이한 견해를 대표할 적절한 인물이 없을 경우 프로듀서는 그러한 견해를 대표할 수 있는 인물을 끝까지 찾아야 한다. 만일 그렇게 할 수 없을 경우 그 사실을 고지해야 한다. 균형성은 반론권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CBC는 심각한 불균형이 언제 발생했는지 그리고 어떠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결정할 책임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뉴스나 시사문제를 다루는 프로그램은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여론의 흐름을 제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때로는 한 사람의 작가, 과학자, 철학자, 전문가, 예술가 또는 시민의 견해를 방송하게 되는데, 이때 뉴스나 시사프로그램의 책임자들은 누적적인 편견이나 어떤 시점에 기울어지는 경향을 피해야 하며, 가능한 여러 가지 견해들을 제공해야 하는 CBC의 책임을 명심하도록 되어 있다.
선거나 국민투표 기간 중 정보프로그램에 대하여 특별한 주의를 기울일 것을 요청한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면밀하고 세심한 정치적 균형을 요구한다. 선거나 국민투표의 감시를 위하여 이 기간 중 통상적으로 양적인 조사가 행해진다. 조작에 의한 불균형이 발생하지 않도록 질적인 평가도 내려져야 한다. 때때로 어떤 프로그램이 한 개인의 사건에 입각하여 만들어질 수도 있다. 그러한 경우, 그 프로그램의 개인적인 특성을 시청자들에게 고지해야 한다. 사견은 그 프로그램의 주제에 관하여 증명할 수 있는 전문가의 견해이어야 한다. 요약해 보면, 캐나다 공영방송 CBC는 방송의 공정성과 균형성을 중시 한다. CBC발행 (프로그램정책)에 따르면 서로 입장이 다른 견해를 공정하게 다루도록 명시하였는데 단순한 중립성이나 산술적 균형이 공정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의견 및 그 배후에 있는 것까지 고려하여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다룰 것을 명시하고 있다. 특히 선거보도에 관해서는 조작에 의한 불균형이 발생하지 않도록 질적인 평가를 함께 내려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불공정한 방송이 문제가 될 경우 CBC는 불균형이 왜, 어떻게, 언제 발생했는지 추적해 후속조치를 취하도록 구체적인 대체방안을 마련해 놓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로 선거방송의 공정성 문제라든지 선거방송의 시청률 하락 등과 같은 문제는 선거방송 관련 종사자에게 중요한 사안으로 다가온다. 미국도 선거방송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방송계, 학계, 신문계 인사들이 나와 81년 "텔레비전과 대통령 선거"라는 주제를 놓고 심포지엄을 개최하였는데 이 당시 제기되었던 문제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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