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에서는 인사동 지역의 일반 현황 및 문제점, 인사동 지역 문화전략의 현황 및 문제점을 중심으로, 이산동 지역 문화전략이 현재 어떠한 문화전략 유형에 속하는지 살펴보고, 그러한 문화전략이 현재 처한 문제는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제 1 절 인사동 지역의 일반 현황
한국인들에게는 '전통문화의 걸리'로, 외국인들에게는 '메리의 거리'로 알려져 있는 인사동의 정확한 범위를 설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일반인들에게 인식되는 인사동은 현재 법정동으로 지정되어 있는 인사동보다는 넓은 범위로, 일반적으로 안국동 로터리로부터 탑골공원으로 이어지는 인사동길을 중심으로 한 인근 구역이다. 굳이 범위를 설정해보자면, 인근 구역을 둘러싼 간선도로를 경계로 하는 지역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67) 인사동 지역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이 지역이 형성된 역사적 과정에 대한 설명이 덧붙여져야겠다.
1. 지역 형성 과정
우선 인사동 지역의 중심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인사동길은 물길을 따라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68) 삼청동에서 시작하여 관훈동, 인사동 사이를 흐르던 개천을 따라 길가에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는데, 이 개천이 개수, 복개되어 오늘의 인사동길의 모습을 띠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사동길이 완만한 곡선의 형태를 띠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내부의 골목들은 양반들이 명택지를 찾아 가구내부에 집을 짓고 난 뒤 접근로를 집 앞까지 개설한 것이 나중에 그 접근로 변에도 집이 들어서면서 형성된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인사동(仁寺洞)이라는 동명은 조선시대 중부 관인방(寬仁坊략)의 '仁'자와 대사동(大寺洞)의 '寺'자를 취하여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69) 인사동을 인사동이 되게 한 寺, 즉 절은 지금의 탑골공원안에 있었다던 원각사70)를 일컫는다. 따라서 인사동 지역을 간선도로로 경계되는 지역으로 이해하게 되면 인사동의 이름의 근원이 되는 원각사터, 즉 탑골공원을 배제하게 되는 모순을 낳게 한다. 인사동 지역에 대한 연구는 범위 설정에서부터 많은 어려움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인사동 지역을 전통문화의 거리로 인식하게 된 연휴도 길다. 인사동에 '전통문화'라는 꼬리표가 본격적으로 붙게 된 것은 88 올림픽을 전후하여 전통문화 축제가 열리면서부터이지만71), 골동품, 고서적으로 대표되는 인사동의 '전통문화'는 일제 강점기인 1920∼30년대부터 형성된 것이었다. 한일합방 이후 인사동 근처에 많은 집들이 들어서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집을 장식할 그림, 가구, 도기, 그릇 등 생활용품들이 주로 거래되다가, 일본인들의 골동품에 대한 수요가 인하여 일반 생활용품외에 고미술품이 거래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72) 오늘날의 상가의 효시는 서점이었는데, 전문 골동품상이 따로 없이 서점을 통해 고서화(古書畵)를 팔고 샀던 것이 그 첫걸음이 되게 되었다.73) 인사동길이 주세(主勢)였고, 점차 견지동, 낙원동, 경운동 일대로까지 확산되었다고 한다. 일본인들의 수요에 의해 형성된 골동품 상가가 오늘날 우리의 '전통문화'가 된 것이다.
해방이 되고 6.25 전쟁을 겪은 후 이후 인사동은 본격적인 골동품 시장의 모습을 띠게 되는데, 일본인이 남겨 놓고 간 골동품들과 한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물건들이 이 곳으로 몰려들면서 인사동길은 온통 서화골동 노점으로 가로성시(街路成市)를 이루게 된다. 한일회담이 이루어지고 난 후 몰려온 일본인들로 인해 인사동의 골동품 상가들은 더욱 활기차게 되는데74) 일본인들의 엄청난 수요는 이 시기 골동품 가격을 껑충 뛰어올라가게 만든다.
한편, 오늘날 인사동 문화의 또 다른 한 축을 형성하는 현대화랑들은 1970년대에 생성되기 시작하였다.75) 한국 최초의 상업화랑인 현대화랑(1970년)을 필두로, 지금은 없지만 문헌화랑(74년), 동산방화랑(76년) 등이 잇따라 개관하게 된 것이다.76) 80년대 들어 그림값이 뛰면서 화랑들이 속속 생겨나게 되고, 인사동 상권의 주역은 골동품 상가들로부터 화랑들로 자리바꿈을 한다. 하지만 80년대 후반 강남 상권이 발달하면서 상당수의 화랑들이 신사동, 청담동 등 강남으로 자리를 옮겨가 90년대 인사동은 다시 변모를 꾀하게 되었다. 전통의 맛을 전하는 찻집과 음식점이 속속 들어서면서 다양한 문화공간으로서 '오지랖'을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77)78) 최근에는 해저물 무렵이 되면 노점 골동상들이 속속 나타나 30년전 라디오에서부터 중국, 티베트 등 세계 구석구석에서 가져온 물건들을 팔기도 하는데, 인사동에 걸맞지 않은 좌판이라고 논란이 일던 것도 잠시이고, 이젠 인사동의 낯설지 않은 한 풍경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듯하다.79)
이렇듯, 인공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형성된 독특한 문화공간인 인사동은 각각의 시대적 켜가 중첩되어 있는 복합문화 공간으로서 나름대로 독특한 지역 고유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현재 인사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문제와 논란들은 바로 인사동의 이러한 특성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과거나 현대가 공존하는 공간은 나름대로의 공존의 방정식이 정립되어 있지 않으면 언제나 균형이 깨어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다음에서 현재 인사동이 처해 있는 상황과 문제점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2. 일반 현황 및 문제점
(1) 인구 동태 및 토지이용
현재 인사동 지역내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은 421세대, 974명으로 집계되고 있으며, 사업종사수는 약 3,000여명, 1일 유동인구80)는 평일인 경우 약 5만명, 주말인 경우는 약 7만명, 차없는 거리 행사의 경우는 약 1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81) 통계적으로 인사동 지역만의 상주인구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다만 종로구 및 종로 1,2가동의 인구변화를 통해서 인사동 지역의 인구 변화 추이를 추정해 볼 수 있는데,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종로구, 특히 상업지역인 종로 1,2가동의 인구는 계속 감소 추세에 있다.
자료 : 종로통계연보
<그림 3-2 종로구 종로 1,2가동 인구변화>
자료 : 종로통계연보
한편 인사동의 토지이용특성을 서울시 건물분 과세대장 활용 용도별 연면적을 통해서 추정해보면, 도심 성향의 토지이용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82)
이처럼 인사동 지역은 인구 및 토지이용상, 전형적인 도심 상업지역의 성격을 띠고 있어 야간에도 도심 공동화 현상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인사동의 특성은 누구를 인사동 지역의 실질적인 주인으로 삼을 것인가 하는 문제를 남긴다. 즉 인사동 지역의 주인을 소수의 거주민으로 삼을 것인지, 인사동의 상가군을 형성하고 있는 지역 상인들로 삼을 것인지, 아니면 인사동을 실제로 '사용하는 지역 방문객으로 삼을 것인지에 대한 문제이다. 이는 정책 수립시 주요한 변수로 작용하는데 어느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정책에 대한 수요가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본 논문에서는 고객이 주인이라는 마케팅의 관점에서, 지역을 실제로 '사용'하는 지역 방문객의 수요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자 한다.83) 거주민의 경우, 그 수가 너무 적어 이들만을 위한 정책 고려를 하기가 힘들고, 지역 상인의 경우는 이들이 실질적으로 인사동 지역에 기여하는 바는 많지만, 인사동에서 일하는 타지역 거주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2) 업종 분포
인사동이 상업지역으로 분류된다고 하지만,84) 다른 도심 상업지역과는 다른 특성을 가진다. 즉 인사동길을 따라 고미술품, 화랑, 전통찻집 등 각종 문화업소들이 집적하고 있어 독특한 복합문화 공간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11월 현재 종로구 문화공보담당관실과 인사전통문화보존회에서 파악하고 있는 문화업종 분포 현황은 다음과 같다.
자료 : 종로구 문화공보담당관실
자료 : 인사전통문화보존회
종로구에서는 점포수로, 인사전통문화보존회에서는 회원수로 집계한 것이어서 합계 차이가 난다. 보존회측에 따르면, 인사동 지역내에는 약 800여개의 사업소가 존재하고 있으며 이 중 일반기업체 및 제과점, 단란주점 등 비문화업종을 제외하면 문화업종은 약 600여개의 업소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즉 전체 상호중의 약 80% 정도가 문화업소라고 추정될 수 있다.85)
인사동의 독특한 문화 이미지의 한 축을 형성하는 이러한 문화업소들이 최근 위기를 맞게 되는데, 장기간 계속된 불황과 현대화를 앞세운 무분별한 개발논리에 휘말려 휘청거리게 된 것이다. 계속되는 불황을 견디지 못하고 수십년간 인사동을 지켜온 화랑들이 속속 떠나는가 하면, 업종 변환으로 타개책을 모색해나고 있다. 문제는 문화업소들이 떠나는 자리에 어김없이 유흥업소가 들어선다는 점이다.86) 이러한 변모를 인사동 문화에 새로이 덧칠해지는 또 다른 문화라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인 이러한 인사동의 변화를 인사동 고유의 이미지에 역행하는 추세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음절 참조)
인사동에서 비문화업종 업소들이 속속 생겨나게 된 배경으로는 경제 불황, 신세대들의 욕구 등도 있겠지만, 인사동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재개발 논리도 한 못을 한다.
(3) 재개발 및 도로 현황
1978년 서울시는 토지의 합리적 이용과 가치의 증진을 도모하기 위해 9,320㎡의 면적을 공평재개발 구역으로 지정하여 줄 것을 건설부에 신청하였다. 이에 건설부는 도시재개발법 제4조 및 도시계획법 제12조의 규정에 의하여 공평재개발구역을 지정, 총 97,498㎡, 19개지구를 사업구역으로 결정하였고, 재개발되는 구역은 업무용도, 업무 및 판매용도, 주거복합용도로 사용될 계획이었다. 현재 6개 지구의 개발이 완료되었으며, 나머지 지구는 미시행상태로 구체적인 개발계획은 수립되어 있지 않고 있다. 개발을 마친 지구는 공평빌딩, 하나로빌딩, 태화빌딩 등과 같은 대형빌딩 중심으로 사무, 업무시설 위주로 입지되어 있으며 대부분 지하 4층, 지상 12∼15층 건물이다.87)
<그림 3-3>에서 보다시피 이 빌딩들은 인사동 지역 내부를 동서로 관통하는 태화관길 북측까지 침투해있어서, 인사동 지역 남측에서 진입하는 방문객들은 고층빌딩으로 인해 인사동 거리를 식별하기가 힘들게 되었다. 그리하여 종로 지역 방문객들과 인사동 지역 방문객들이 혼재하게 되어 이 구역은 사실상 인사동이라기 보다는 종로 문화에 가까운 곳이 되어 버린 것이다. 1970년대 도시기능 확장에 따른 개발압력과 그로인한 무불변한 재개발의 결과, 수백년 동안 지속되어 오던 역사 유적지의 파괴는 물론 새로 들어선 고층건물들로 인하여 그나마 남아 있는 인사동 문화도 파괴될 처지에 이른 것이다.88)
한편, 최근 인사동 지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또 다른 문제는 인사동길의 확폭문제89), 골목길 정비 문제 등 도로정비에 관한 문제이다. 확폭 논란이 일고 있는 인사동길의 대상지는 '학고재'에서 인사동 사거리까지의 약 260m의 도로로서, 일제시대 이래로 확폭계획은 잡혀 있었으나 1978년 일부 구간만 사업을 시행하고 현재까지 미시행구간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던 것이 현재 일부 상인과 건물 소유주를 중심으로 한 '확장론자'들이 안전한 보행공간 확보90) 및 인사동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 도로 확폭을 포함, 주변을 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다시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건물 세입자와 문화인들은 도로확장과 함께 새 건물이 신축되면 임대료 상승으로 기존 상인이 떠나고 자생적으로 형성된 인사동 분위기도 깨어진다며 반대를 하고 있다. 이렇게 되자 현 서울시장이 '시장과 시민의 데이트'에서 이 문제 관련자들을 불러 '시민단체들은 시민 합의를 이끈 뒤 바람직한 인사동 발전 모델을 제시하고 시는 도로계획 폐지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해진다.91)
골목길의 경우, 관훈동 일대가 아직 개량 한옥이나마 한옥촌으로 남아 있어 옛지역의 형세를 그대로 지니고 있어서 조선시대 이래로 있던 골목길들이 아직도 여기저기 남아있다.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옛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이들 골목들은 현재 일부 구간에 막다른 골목이 존재하여 (<그림 3-4> 참조) 방문객들이 통행에 불편을 느끼게한다. 그리하여 막힌 곳을 형성하는 필지를 도로화하여 골목길을 연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고 있는데 실제로 막힌 곳의 어느 부분을 뚫어 골목길을 정비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상인들, 지주들의 이해 관계가 개입되어 있기 때문에 각자 주장하는 구간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림 3-4>의 원은 현재 정비 논란이 일고 있는 막다른 골목길의 구간이다.
한편 인사동 골목길에 대해 전혀 다른 의견을 내는 단체도 있다. 최근 발족한 시민모임인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약칭 인사모)'에서는 '인사동 애호가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인위적 볼거리 보다는 화랑, 고미술품, 한옥 등이 어우러진 인사동 골목'이라며,92) 이를 위해서 한옥 훼손 막기, 인사동 골목 지키기 운동 등을 펼쳐 인사동이 어떤 식으로든 '개발'되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이러한 인사동의 일반적 상황들은 지역 문화전략, 특히 제품전략을 수립하는데 있어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재개발의 경우를 예로 들더라도 한 지역의 재개발 계획의 방향은 장소의 이미지를 '전통문화'로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 '도심 상업문화'로 변질시킬 것인지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한 장소의 방문객의 증가는 전략주체가 예기치 못한 결과를 야기시킬 수도 있는데, 인사동의 경우에서처럼 기존 고객층 이외의 새로운 고객의 유입이 기존의 문화업종들에 압박을 가해 인사동 이미지와는 맞지 않는 업종들이 생겨날 수 잇는 환경을 조성하기도 한다.93)
제 2 절 인사동 지역의 문화 전략 현황
인사동 지역은 문화전략 수립의 기반이 되는 문화 인프라가 비교적 잘 마련되어 있는 편이다. 그렇다면 인사동 지역의 독특한 정체성을 형성하는 지역 문화 인프라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며 이를 기반으로 한 지역 문화 전략은 어떠한 형태를 띠고, 어떠한 문제를 가지는가를 이 절에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1. 인사동 지역의 문화 인프라
인사동 지역의 문화 인프라는 크게 객관적으로 공간상에 표출되어 있는 물리적 표상과 주관적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인식되고 있는 심리적 이미지로 대별될 수 있다. 먼저 인사동의 물리적 문화 인프라에 대해서는 역사적 유물, 문화적 공간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이어 일반인들이 인사동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설문분석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1) 역사적 유물
인사동 지역은 일반적으로 전통문화의 거리라고 알려진 것처럼 한국의 역사적 요소를 많이 구비하고 있다. '전통문화'에 대한 논란, 즉 일제시대 이래로 만들어진 골동품 상가 중심의 전통문화가 진정한 전통문화인지에 대한 문제는 접어두고 인사동을 전통문화의 거리라고 규정하는 몇 가지 역사적 요소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인사동 지역에 남아 있는 역사적 유물로, 현재 정부에 의해 지정된 문화재는 총 9개이다. 이는 대상범위로 삼은 지역 내부에 존재하는 문화재뿐만 아니라 인위적 경계를 설정한 도로 주변에 있는 문화재도 포함한 숫자이다.94) 즉 인사동(仁寺洞)의 이름 가운데 있는 절의 유래가 되는 원각사가 남긴 유물인 원각사지 10층석탑과 원각사비, 원각사가 존재하는 터인 탑골공원, 우정국로의 이름의 유래가 되는 우정총국, 삼일로의 길변에 붙은 운현궁, 김승현家를 포함하는 숫자이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인사동길 '골동품의 거리'라고 여기기보다는 역사도시 서울의 대표적 장소라 여길 것이다. 종부가 인위적으로 지정한 문화재외에도 이 곳에는 조선시대 이율곡, 조광조, 이완 장군의 집터, 조선 말 근세 세도가들의 거실고문(巨室高門)의 흔적들, 3.1운동의 진원지가 되는 태화관터 및 승동교회, 서울중심표지돌 등 각종 역사적 유적들이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그림 3-6> 참조>
이러한 역사적 유물에 대해서는 일반인들이 잘 알지 못하는 것은 대부분의 유적들이 고층빌딩에 둘러싸여 있거나, 제대로 된 표시마저 되어 있지 않아, 그 흔적들을 식별하기란 힘이 들기 때문이다. 표석이 있는 경우도 주변 환경에 가려져, 그 표석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일반인들로서는 인식할 수가 없다. (<그림 3-7> 참조) 한국인들조차 그런데 외국 관광객들이 이러한 역사 유적지를 알아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제대로 된 안내판도 없을 뿐만 아니라 무료로 제공하는 관광객용 안내지도에도 역사 유적지에 대한 설명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 유적지와 더불어 인사동을 '전통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것은 아직은 그런대로 유지되어 있는 한옥촌 때문이다. (<그림 3-8> 참조) 그나마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것은 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는 민익두가 한 채 뿐이고 나머지는 음식점, 골동품 상점, 미술관 등으로 용도 전환하여 사용하고 있어 기와 지붕을 제외하고 보면 한옥다운 한옥은 몇 채 남지 않는다. 게다가 인사동 지역내 유일한 전통한옥 민익두가는 반쯤 허물어진채로 남아있다. 이미 사람이 살지 않은 폐가가 되어 허물어질 날만을 기다리고 있게 된 것이다.
인사동에서 보존 가치를 인정받아 민속자료로 지정된 한옥은 원래 3채였다. 박영효가 살기도 했던 이진승家(18호)는 97년 한옥촌으로 옮겨졌고, 화신백화점 설계자 박길룡이 1930년대 민익두家와 함께 만든 정순주家(16호)는 94년 노원구 월계동으로 옮겨가 모 종친회 사당이 되었다. 전통한옥과 근대건축을 잇는 다리 구실을 하는 15호 민익두가는 그나마 비석에 16호로 오기돼 있다. 서울시 관계자에 따르면 민속자료는 소유자가 관리 의무자인데도 지정해제를 노리고 일부러 방치해 고층빌딩을 짓는 일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소유자들은 관에서 일방적으로 지정하는 것은 정당한 재산권 행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문화재관리법상 민속자료는 원형을 해치는 증, 개축은 할 수 없다. 98년 서울시 문화재 관리 예산은 6억 4천만원인데, 문묘, 러시아 공사관 등 굵직굵직한 문화재 보수에 쓰다보면 사유한옥의 보수 문제는 한참 뒷순위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박영효와 정순주가는 주인들이 각각 시와 종친회에 공짜로 줘버렸다. 그 뒤 박영효 집터는 경인미술관 마당이 되었고 정순주 집터는 시원하게 밀어붙여 주차장으로 변했다.95) 정부에서 관리하는 문화재의 현실이 이러한데, 다른 유적지들의 상황이라고 더 나을 리가 있을 리 없다.
(2) 문화상가를 중심으로 한 문화공간
인사동내 역사 유적지가 아무리 많이 분포되어 있더라도 그러한 역사 유적지 때문에 사람들이 인사동에 몰려오는 것은 아니다. 골동품 상가, 화랑, 전통찻집을 중심으로 한 인사동의 다양한 상점들이 인사동의 고유한 이미지를 만들어, 사람들의 발걸음을 끄는 것이다.
<그림 3-9 인사동의 찻집 분포도>
조사에 따르면, 인사동 지역 방문객들이 인사동을 방문하는 목적 1순위는 '화랑구경 및 전시회 관람', '고즈넉한 분위기를 즐기러', '골동품 및 민예품 구입' 순으로 나타났다. 전통 한옥 및 역사 유적지 방문을 목적으로 삼은 사람은 1.5%에 불과했다.96)
자료 : 설문조사 (신뢰도 95% 수준에서 오차한계 ±5%)
그러나 인사동 지역의 문화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는 이들 문화업종이 최근 위기를 맞고 있는데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인사동의 고유 이미지와는 맞지 않는 업종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업종이 문화업종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명확히 서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기존의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업종으로 인하여 한 장소의 이미지가 파괴되어 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설문 결과, 인사동 지역을 방문하는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인사동의 고유한 문화 이미지를 해친다고 생각되는 것으로서 '오락실, 수퍼마켓 등의 소비업종 상점들'을 꼽았다. 즉, 총 응답자 334명중 미표기자 3명을 제외한 331명의 답변자 중 49.0%에 달하는 사람들이 '소비업종'을 인사동의 문화 이미지를 가장 해치는 것으로 여긴 것이다. 그 밖에 인사동길을 지나는 '통행차량(28.3%)'과 '주변의 고층건물(15.1%)'도 인사동 문화 이미지를 해치는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노점상(3.6%)' 문제는 크게 우려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들이 이미 인사동의 한 구성요소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97)
인사동의 문화업종 상권이 위기를 맞게 된 것은 비단 오늘 내일의 일이 아니었다. 70년대는 골동품 상점들이, 80년대 후반부터는 화랑가들이 타지역의 경쟁업체에 의해 위기를 맞아 왔었다. 골동품 상점, 고서적 취급점, 필방들이 즐비하던 70년대의 인사동에 처음 들어선 현대적 상업화랑도 그 시절의 인사동 문화에는 이질적인 요소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이들 화랑들은 '전통'을 상징하는 골동품상들과 조화를 이루면서 인사동의 중추 문화요소로서 자리를 잡고 있다.
소비업종 증가라는 현재의 위기도 90년대라는 시대적 켜가 작용한 것에 다름 아니다. 물론 오락실이라든가 단란주점 같은 종로 소비문화가 인사동에 침투해 오는 것은 막아야겠지만, 많은 논란 속에서도 이미 인사동의 한 이미지로 자리 잡은 '외국 골동품 상가'나 '생활한복점'98) 같은 90년대 인사동 문화업종도 있기 때문이다.
(3) 상징 이미지
서울 도심 한가운데 아직도 남아있는 한옥촌과 역사 유적지를 안고 전통을 파는 골동품상과 현대적 화랑이 공존하는 공간인 인사동은 확실히 여타의 지역과는 구분이 되는 그만의 독특한 문화 이미지가 있다. 인사동 방문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인사동 방문객들의 대부분은 인사동에 고유의 문화 또는 이미지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총 응답자(334명) 중 88.9%(297명)가 인사동에는 지역 고유의 문화 이미지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없다고 답변한 사람은 11.1%(37명)에 불과했다.
인사동에 고유한 문화 이미지가 있다고 답변한 사람들(297명)에게 그 문화 이미지가 무엇인가를 질문한 결과, 응답자의 약 64.6%(192명)가 인사동의 고유문화로 '전통문화'를 꼽았다. 한국인 응답자(219명)의 경우 응답자의 71.1%(157명)가, 외국인 응답자(78명)의 경우 응답자의 44.9%(35명)가 인사동의 문화 이미지를 '전통문화'로 인식하고 있어, '전통문화'란 어떠한 인지 경로를 통해 한국인들에게 각인된 것이지 절대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현상을 보다 객관적으로 파악할 위치에 있는 외국인의 경우, 이 수치가 현저하게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조사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인사동 지역의 문화 이미지는 '전통문화' 또는 '미술의 거리'라는 이미지를 중심으로 방문객들에게 인식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지역의 고유 문화 이미지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형상물에 의해 야기되는가를 방문객들이 꼽은 지역의 대표 상징물을 통해 파악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응답자에 따르면, 인사동 지역을 대표하는 상징물은 '인사동길 자체 (148명/45.7%)', '가로변의 문화업종 상가 (88명/27.2%)', '전통한옥과 옛 건물 (70명/21.6%), '역사유적지 (10명/3.1%)', '기타 (8명/2.4%)' 순으로 나타나, 인사동의 고유 문화 이미지를 형성하는 것은 구체적인 문화 형상물이라기 보다는 거리 자체에서 풍겨져 나오는 분위기임을 알 수 있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인사동 지역은 객관적 물리적 표상으로서나, 주관적 심리적 인지도로서나 문화전략을 위한 문화 인프라가 비교적 잘 구비되어 있다. 이러한 여건은 인사동의 지역 문화전략이 강화적 문화전략이 되어야 함을 나타내 주고 있다. 즉 지역 문화전략의 자원으로서 객관적 문화 인프라가 잘 마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고객에 의해 인지되는 문화 이미지 또한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나, 기존에 존재하는 문화 인프라들, 즉 문화업종 및 역사적 유물들의 이미지를 북돋아주는 전략을 채택하는 것이 새로운 이미지를 형성하는 것보다 효과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에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인사동 지역내 문화 관련 활동들의 현황을 살펴서, 전략 주체가 인사동의 이러한 전략적 여건을 반영하고 있는지를 파악해 보도록 하겠다.
2. 인사동의 문화전략 현황
강화적 문화전략은 고객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바꾸어야 하는 변화적 문화전략보다는 비교적 수월한 전략 과정을 거치겠지만 이 경우에도 전략이 실패할 여지는 있는데 강화를 위해 제공된 이미지 자체가, 또는 강화를 위해 제공된 이미지의 결과가, 기존의 이미지와 배치되어서 고객이 거부 반응을 가지게 될 때가 그러하다.
인사동 지역의 경우에도 이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게 된 문화행사가 있었다. 97년 4월 인사동 지역에서 '일요일 차없는 거리-문화장터'를 개최하자, 일반시민들은 이제 일요일에라도 차가 없는 거리에서 인사동의 전통문화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면서 기뻐하였다.99) 그러나 일부에서는 문화장터가 문화는 간데 없고 먹거리만 넘쳐나게 되어, 인사동이 차 없는 거리 행사이후 유흥업소들로 넘쳐나게 된 대학로100)처럼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101) 이러한 우려는 문화행사가 개최된 지 몇 달이 지나자 현실로 나타나게 된다. 즉 문화행사가 좌판 위주의 상업적 판매장으로 전락해, 매주 일요일 10만여명의 시민이 다녀가는 등 장소를 알리는데는 나름대로 성과를 거뒀으나 문화적 정체성을 부각시키는데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오게 된 것이다.102)
해를 넘기면서 이러한 논란은 점차 심해져, 인사동은 '문화의 거리'가 아니라 '문화의 距離'라는 혹평까지 받게 된다. 최근 생겨나게 된 인사동의 전자오락실도 문화감상보다는 좌판의 엿과 떡에 관심이 더 많은 청소년들을 겨냥해서 나온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다. 한 화랑주는 '인사동을 문화의 거리로 가꾸겠다던 인사전통문화보존회가 오히려 파괴회 역할을 한다'며 강한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화랑들을 비난하는 여론 역시 만만치 않은데, 특정 계층이 아닌 모든 사람이 한데 어울려 축제의 분위기를 만끽하는 것이 원래 '문화의 거리'의 취지인데 몰려드는 사람들을 귀찮아하는 화랑도 문제라는 주장이다.103) 최근 인사동에 대한 이러한 논란을 반영이라도 하듯이 PC통신란에 인사동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정보 제공업체도 생겨났고,104) 인사동을 지키자는 시민 모임인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약칭 '인사모')'도 발족하게 된다.
1998년 6월 문화행사가 개최된지 1여년만에 행사를 운영해 오던 '인사전통문화보존회'는 잡상인 난립과 무질서 등을 이유로 '인사동 차없는 거리-문화장터'를 잠정 중단하겠다는 발표를 한다. 이에 잠시 잠잠하던 인사동에 대한 논란이 다시 무성해 지게 되었다. 특히 일각에선 이 행사가 출발 당시부터 행사의 목표가 불분명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지적도 하였다. 즉 '문화장터'인지 '격조있는 전통 문화의 체험장'인지 목표가 확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줄타기, 떡메로 떡 만들기 등 도심 속 민속촌의 인상을 시민들에게 심어주는데는 성공했지만 시민들이 문화의 향기로 흡인할만한 수준높은 문화행사가 지속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이다.105) 아울러 지역 상인들에게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유인을 제시하지 못한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민예품 상점이나 군것질 좌판엔 손님이 들끓지만 정작 인사동에 터박고 사는 화랑, 전통음식점, 표구점 등은 행사가 열리는 일요일엔 문조차 열지 않는 곳이 상당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뜩이나 일반시민들이 향유할 수 있는 변변한 문화공간 및 행사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서울시내에, 일요일에라도 통행차량에 시달리지 않고 가족 단위로 즐길 수 있는 문화행사를 개최해 주던 인사동이 '행사 포기'라는 극약 처방을 내리자, 행사를 다시 살려내야 된다는 여론이 일게 되었다.106) 잡상인들로 인해 문화행사가 중단된다는 것은 시민의식도 행정력도 없는 후진국임을 자처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었다.107)
현재 '차없는 거리 문화행사'는 종로구청의 강력한 잡상인 지도, 단속 등을 약속받아 9월 6일 재개하게 되었다. 다음에서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차없는 거리 문화행사' 뿐만 아니라 여타 관련 문화전략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 보도록 하겠다.
(1) 거리조성
인사동 '차없는 거리 문화행사'가 시작된 연유는 90년 당시 초대 문화부장관이었던 이어령씨가 문화환경개선을 위한 정책의 하나로 각 시,도에 '문화의 거리'108) 조성을 권장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109) 이에 따라 서울시는 본격적인 자치시대를 맞아 자치구별 '1문화원, 1축제, 1문화의 거리'라는 시정목표 아래 '대학로 연극의 거리', '인사동 전통문화의 거리', '영화의 거리' 등 테마를 가진 문화거리 조성방침을 수립, 현재 9개소의 문화의 거리를 가지고 있게 되었다.
한편 96년 5월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걷고 싶은 서울 만들기' 운동 추진, '서울시 보행권 확보 및 보행환경 개선에 관한 특별법 조례안'을 발표하게 되고,110) 96년 5월 서울시 교통특별기획단에서 '차없는 거리' 조성 계획을 발표하게 된다.111)
이후 97년 문화체육부(현 문화관광부)에서 97년 '문화유산의 해'로 지정한 것과 때를 맞추어, 97년 4월 종로구는 인사동을 '차 없는 거리'로 지정하게 되었고 '인사동 전통문화의 거리'는 '차 없는 거리'라는 명칭을 하나 더 얻게 된다. 인사동의 '일요일 차 없는 거리 문화행사' 이러한 과정 속에서 탄생하게 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