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 한국 비디오산업의 구조와 현황
1. 한국 비디오산업의 성립과 발전
1951년 미국의 RCA사가 비디오시스템 개발에 착수한 아래 1962년 일본의 SONY사가 소형 VCR(Video Cassette Recorder)을 개발하여 1975년부터 Beta방식의 가정용 VCR을 처음 시판하고, 1976년에는 일본의 JVC사도 VHS방식의 VCR을 개발하여 판매함으로써 본격적인 비디오의 대중화 시대를 시작되었다.
한편, 우리나라의 비디오산업은 1978년 삼성이 미국 RCA사로부터 Video Disk Player의 특허실시권을 도입하여 1979부터 기계식 VCR을 생산하면서 시작되었으며, 같은 해 금성은 VHS방식의 전자식 VCR을 개발하였다. 뒤이어 대우전자의 전신인 대한전선에 Beta방식의 전자식 VCR을 개발하였다.
당시에는 VCR의 생산량도 적었고, 가격 또한 상당히 비싼 편이었기 때문에 대중화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1982년 정부의 첨단기술 육성방안에 따라 VCR의 특별소비세가 40%에서 4%로 대폭 인하되었다. 따라서 당시 98만원대의 VCR 가격이 66만원대로 인하되었으며, 점차 VCR의 생산량과 판매량이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1985년 30만원대의 VCR이 대량으로 생산, 시판됨으로써 국내수요도 급증하였다.또한 1988년에는 올림픽 수요로 인한 폭발적인 내수증가와 수출이 이루어짐에 따라 VCR의 생산과 보급은 급증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VCR 보급현황은 93년 현재 약 80%의 보급율2)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82년 당시 0.9%에 불과했던 보급율과 비교하면 급격한 신장률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래의 <표IV-1>은 이러한 보급률의 추이를 나타내준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비디오 프로그램이 제작된 것은 1970년대 후반이었다. 물론 당시에는 독립적인 제작사가 자체적으로 프로테이프3)를 제작한 것이 아니고, 미군 P.X나 해외여행자들을 통해 국내에 밀반입된 프로테이프나 미국과 일본의 텔레비전전 방송을 불법으로 복사하여 음성적으로 시판하는 정도였다.
이와 같은 불법적인 제작과 유통을 근절하기 위한 일환으로 1981년 당시 문화공보부가 1967년 3월에 재정된 "음반에 관한 법률"4)을 개정하였다. 이로써 1981년에는 정식으로 4개의 비디오 프로그램 제작업체가 등록허가를 받아 설립되었고, 1993년 현재 187개가 등록되어 있다.5)
비디오 프로그램 제작사들은 성립초기에 영세 기업으로 출발하여 자체적인 프로그램 제작능력을 갖출 수 없었으므로, 외국의 값싼 영화를 구입하여 이를 자막처리하여 판매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또한 외화중에는 포르노 프로그램이나 중국 무술영화가 대부분이었는데, 이의 수입은 세칭 '보따리 장사'라 일컬어지는 브로커(broker)들이 판권을 구입하여 제작사에 재판매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비디오 프로그램 제작사들은 프로그램의 생산을 통해서보다는 관공서나 공공단체의 홍보물을 대행해서 제작하거나 기업광고물의 제작을 대행함으로써 이윤을 확보하기도 했다.
1984년 이후 국내의 가전 3사(삼성, 금성, 대우)들은 그들의 VCR 판매확대의 방법으로 비디오 소프트웨어 산업에 진출하기 시작하였고, 중소 비디오 프로그램 제작사들은 미국의 중소 영화배급사들의 프로그램을 수입하기도 하였다. 1987년부터는 미국 메이저 영화사들의 국내진출과 대우, 금성, 삼성, 선경 등의 대기업들이 국내 비디오 소프트웨어 산업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게 됨에 따라, 국내 비디오산업은 미국의 메이저 영화사들이나 이들과 판권계약을 체결한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과정을 밟았다.6)
이러한 우리나라의 지난 10년간 비디오산업의 발전을 간략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7)
먼저 VCR이 공식적으로 공급된 1982년부터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88년까지를 초기단계라 할 수 있다.
이 시기에는 소프트웨어, 즉 비디오 프로그램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매달 한두 편의 출시가 고작일 정도였기 때문에 포르노 테이프의 암시장이 활성화되었고, VCR 또한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다. 따라서 비디오문화라는 표현이 어색할 정도로 척박했던 시기이다.
1987년말 저작권법이 생기면서 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외국의 메이저사들이 본격적으로 국내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1988년 당시의 VCR 보급율은 21%에 달했었다. 이때부터 91년까지는 성장단계라 할 수 있다. 1991년 보급율은 44%를 넘어섰고, 일반적으로 40%를 상회하면 문화라는 이름에 걸맞는 산업이 형성된다고 할 수 있다.
1992년 이후 비디오산업은 성숙단계8)를 맞이한다. 1992년 당시 VCR 보급율은 57%에 달하게 되었으며, 총매출액 또한 매년 40-100%의 수직상승을 지나 약 25% 성장으로 감소하는 조정기에 들어섰고, 수만장 이상 판매된 프로테이프가 10여년 동안 거의 다 수입되어 동이 났다고 할 수 있다.9) 그리고 영상매체 소비자들의 취향도 다양화, 전문화되는 시기로 발돋움한 것이다. 이때부터 비디오는 홈 엔터테인먼트(home entertainment)로서의 기능을 발휘하게 된다. 뉴미디어로서의 비디오가 이제 생활 미디어가 된 것이다.
1993년말 현재 비디오시장의 규모는 연간 2천 5백여편이 출시되면서. 판매액은 2천 5백억원, 대여액은 8천억원으로 1조원을 넘어섰고, 2천억원 규모의 영화시장을 능가하는 산업으로 성장했다.10)
2. 미국 할리우드 메이저의 한국진출과 비디오산업
비디오시장에 있어서의 미국 할리우드 메이저사들의 진출에 앞서, 이의 기초가 되었던 영화시장의 개방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영화법의 개정과 영화시장의 개방
① 개방압력과 그 내용
국내 영화법은 1973-1984년에 이르는 동안 영화법에 의한 허가제를 통하여 영화산업 진입 및 영화제작이 통제되어 왔으나, 1984년 12월 1차 영화법 개정으로 등록제로 변경되면서 제작자유화 조치를 위하였으며, 이어 1986년에는 2차 영화법 개정으로 영화업의 해외개방을 허용하였다.11) 이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1985년 하반기에 한국 영화계는 미국영화수출협회(Motion Picture Export Association of America: MPEAA)로부터 외화에 대한 '수입개방압력'을 받게 되었다. 이는 1985년 9월 9일 미국영화수출협회가 미국영화에 대해 한국이 불공정한 수입규제를 하고 있고, 또 지나친 검열의 규제를 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미국 상공부의 무역대표부(USTR)에 제소한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무렵은 미국이 자국의 상품에 대해서는 보호무역주의와 지적소유권을 주장하는 한편, 한국에 대해서는 서비스·유통시장에 대한 개방압력을 가하기 시작한 때이다. 영화에 대한 개방압력도 그 일환이었다.12)
첫째, 외국영화업자가 한국에 와서 한국의 극장주들과 직접 거래할 수 있도록 할 것,
둘째, 현재 연간 5백만 달러로 묶여있는 외화 수입할당액을 늘릴 것,
셋째, 외화수입업을 등록할 때, 예치금으로 7억원을 내도록 되어있는 것을 완화할 것,
넷째, 현재 한국 영화관에서의 국산영화의 의무상영일수(스크린쿼터)가 연간 2/5 이상으로 되어있는 것을 완화해서 외화를 더 많이 상 영할 수 있도록 할 것.
다섯째, 텔레비전 영화의 내용검열 완화와 필름 1편당 수입가격을 2만 5천 달러로 규제하고 있는 것과 가정용 비디오 프로그램의 수입금지를 완화할 것 등이다.
이에 대하여 우리나라는 1985년 12월 한미영화협회간 합의를 통하여 미국영화사의 한국내 지사설치 허용 및 한국에서의 영화제작 허용, 한국에서의 영화제작과 외화수입시 납부하는 1억 5천만원의 폐지, 외화수입업자 등록예탁금을 7억원에서 5천만원으로 대폭 인하, 외화수입가격의 상한선 및 수입쿼터제도의 폐지, 1988년부터 단계적으로 관세인하, 외화수입 할당액을 늘리고 시판용 비디오 소프트웨어의 합작투자와 생산판매의 허용 등 대부분의 요구를 수락하였으나, 스크린쿼터제도는 존속시키기로 하였다. 이는 곧 영화시장의 개방을 의미하는 것이라 하겠다.13) 이에 따라 1986년 12월 31일에는 영화법을 개정하여 1987년 7월 1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② 미국 직배영화사의 한국진출
1987년 7월 1일부터 제6차 개정영화법의 시행으로 외국의 영화배급사의 국내지사가 설립될 수 있게 된 이후, 미국의 UIP(United International Pictures)사14)와 20세기 폭스(Twentieth Century Fox)사가 활동을 개시하였다.
1988년 이후 직배사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나, 국내 영화제가 한국영화보호의 차원에서 격렬한 반대를 함에 따라 다소 주춤하기도 했다. 그러나 Warner Brothers, Columbia-Tristar, Orion, Walt Disnet 등의 메이저사들이 계속적으로 진출하고, 수준급의 영화들을 배급하면서 시장의 점유가 증가하기 시작하였으며, 직배에 대한 반대 분위기도 가라앉게 되었다.
이는 UIP와 Warner Brothers의 직접배급이 거센 반발을 받게 되자, 20세기 폭스, Columbia, Orion 등은 국내영화업자들을 앞세워 간접배급방식을 이용,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면서 시내중심가 극장진출을 일반화 시키는 방법으로 이루어졌다.15)
이러한 직배사의 연도별 직배현황을 살펴보면, 다음의 <표 IV-2>와 같다.

이 표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1988년 미국의 직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래로 5년이 흐르는 동안 직배영화는 한국의 흥행시장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급성장하엿다. 직배 첫해인 88년의 1편을 시작으로 89년 17편, 90년 40편, 91년 50편으로 해마다 증가해 온 직배영화는 92년 무려 61편에 이르게 되었다. 직배영화의 편수는 전체 수입외화의 20% 정도지만 실제 시장점유율은 엄청난 수치를 나타낸다.(아래의 <표 IV-3> 참조)

또한 <표 IV-4>에서 보듯이, 92년 외화흥행 랭킹 10위 중에서 직배영화가 6편이나 되는 것을 감안한다면, 직배영화의 시장잠식 정도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보듯이 직배영화의 시장잠식도 문제지만, 그들이 벌어들인 흥행수익이 한국의 영화발전에 거의 기여하지 못하고 대부분 미국으로 송금되도록 방치되고 있다. 즉 직배사들은 종영직후 UIP나 워너 브라더스는 매출액의 60%, 콜럼비아-트라이스타와 20세기 폭스는 50%를 로열티 명목으로 송금하고 있다.16) 이러한 사실은 1993년 문화체육부 국정감사에서 나타난 자료(<표 IV-5>)를 보면, 더욱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또한 그동안 직배영화의 프린트 벌수(the number of prints allowed) 제한17)을 두어 왔으나. 1994년부터는 프린트 제한벌수규정이 삭제됨에 따라 직배영화가 무제한적으로 전국에 동시개봉될 가능성마저 열려있다.18)
③ 정부의 영화정책과 평가
이상에서 살펴본 한국 영화시장에서의 미국직배사들의 활동은 한국정부의 영화정책과 맞물려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아래에서는 영화시장의 개방과 관련하여 한국정부의 정책과 대응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1962년 영화법이 제정된 이후 한국영화의 제작이나 외국영화의 수입은 엄격한 통제상태에서 이루어졌으며, 이 같은 상황은 1985년에 이르러서야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1984년 12월 31일자로 개정된 영화법은 그때까지 사실상 정부가 장악하고 있던 영화제작 및 수입권한의 대부분을 민간에게 환원시켜주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개정된 영화법은 허가제로 규제하고 있던 영화법을 등록제로 전환하고 영화업의 형태로 '국산영화제작업'과 '외국영화의 수입업'으로 분리했다. 이에 따라 영화제작을 하고자 하는 법인이나 개인은 일정한 자본금을 갖추고 등록에 필요한 예치금을 납부하기만 하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19)
이 같은 변화는 그 이전의 법에 의해 허가되었던 20개 안팎의 영화사들이 영화제작 및 외국영화 수입권을 모두 장악함으로써 소수의 영화사들이 국내 영화시장을 과점하는 특혜적 현상이 심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한 한국영화의 질적 저하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던데 대한 개선의 필요성이 반영될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법을 제정하고 여러가지 행정지침 등을 동원해 한국영화의 진흥을 의도했던 정부의 영화시책은 그에 따른 마땅한 보상책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에 불안정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정부는 외국 영화 수입권을 각 영화사에 배분하는 것으로 통제와 보상의 기능을 동시에 의도했지만, 이는 한국영화의 진흥이라는 당초 의도를 극대화하기보다는 오히려 외국영화 수입권을 따기 위해한국영화가 들러리로 제작되다시피 하는 모순된 현상을 촉발시키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영화시장을 과점하고 있던 영화사들이 외국영화 수입을 통한 이권 챙기기에 한국영화를 희생시키고 있다는 비판적 여론이 영화계 내부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광범위하게 제기되기에 이르렀다. 이 같은 여론은 중앙정부의 집중되어 있던 각종 업무관리기능이 지방자체단체로 이관되거나 민간에 이양되는 개방화 추세와 맞물려 더욱 증폭됨으로써 결국 법개정으로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1986년 12월 31일로 다시 개정, 공포된 영화법은 외국영화의 수입시장을 개방했다. 당시의 한국영화의 제작자본이 자체적인 확대재생산으로 이루어지기 보다는 외국영화의 수입을 통해 얻는 수익을 한국영화 제작에 전환시키는 형태로 조작되고 있었기 때문에 외국영화 수입자유화는 곧 제작자본 조달루트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의미했다. 수입자유화 이전 국내 영화시장은 사회·문화적인 비판에도 불구하고 제작이든, 수입이든 모두 국내 영화사들이 주도함으로써 이에 따른 흥행의 과실은 영화계가 그대로 보유하는 형태였다. 그러나 외국영화사들에 의한 직접흥행은 이 같은 형태를 구조적으로 해체하는 요인이 된 것이다.20)
이런 점에서 볼 때, 1980년대의 한국영화 제작자유화 조치는 한국영화가 타율적 통제를 벗어서 자유로운 경쟁체제에 진입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했으나, 뒤따라 이루어진 수입자유화 조치는 자율적 기반과 상품적 경쟁력이 미흡한 한국영화의 상업적 안정을 위협하는 상황을 동시에 불러들인 것이기도 하다.
2> 비디오시장과 미국 메이저의 활동
① 국내 대기업과 미국 메이저의 비디오산업 진입
1986년의 한미통상협상21)과 1987년의 저작권법의 발효22), 영화시장의 개방 등은 미국 메이저 영화사들이 국내 비디오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우호적인 시장조건을 마련한 것이었다. 또한 1987년부터 대우, 금성, 삼성, 선경 등의 대기업들이 국내 비디오 프로그램 소프트웨어 산업에 적극적으로 진출함에 따라 국내의 비디오산업은 미국의 메이저들이나 이들과 판권계약을 맺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시장구조가 형성되었다.23) 즉 대기업의 시장진출로 비디오산업의 시장규모는 급속히 성장하였고, 미국의 메이저 영화사들에게는 국내 4대 전자회사들이 할리우드가 보유하고 있는 영화를 적절한 가격으로 대량판매하기에 가장 좋은 파트너로 고려된 것이다.24)
당시 국내의 대기업들과 미국의 메이저 영화사들이 맺은 라이센스 현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대우는 MGM/UA, Columbia-Tristar와 87년 독점계약을 맺고 88년 1월부터 출시를 시작했으며, 90년에는 20세기 폭스와 추가계약을 함으로써 다량의 소프트웨어를 보유하게 되었다. 89년에는 선경의 SKC도 Warner Brothers와 계약을 체결, 공테이프 산업에서 전격적으로 프로테이프 시장으로 뛰어들었다. 또한 삼성물산은 90년 7월 Walt Disnet와 손잡고 상품을 출시하기 시작했다.25) 이로써 직배사인 UIP-CIC26)와 함께 미국의 메이저사들의 한국상륙이 완료되었다.27)
이러한 미국 할리우드 메이저들의 한국 비디오시장 진출은 앞에서 살펴본 영화시장에의 진출과 함께 이루어졌는데, 영화시장에의 진출이 거센 반발을 받은 것에 비해 비디오시장에의 진출은 오히려 쉽게 이루어졌다.
그 이유는 당시 한국의 비디오산업이 성장단계에 있었으며, 또한 비디오가 음반법규에 따라 음반법의 적용을 받으므로 행정적인 취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한국의 경우, 영화업자와 비디오업자가 각각 분리되어 있어 같은 영화이면서도 전혀 다른 시장구조를 형성하고 있으므로 미국 영화업자들로서는 더욱 편리할 수 밖에 없었다.28) 그리고 비디오산업을 통한 부수수입(spin-off)의 가치를 인식하면서, 하드웨어 시장과 소프트웨어 시장의 수직적 통합(vertical integration)을 통한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는 대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중소 비디오업자들의 인식부족과 미흡한 대처 등으로 인해 쉽게 공략이 가능했던 것이다.
② 대기업과 메이저의 시장지배
한국의 비디오산업 유통경로는 크게 제작사, 도매상(대리점), 소매상으로 구분할 수 있다<그림 IV-1>. 제작사는 프로그램의 생산과 외국프로그램을 수입하고 있다. 그리고 도매상이나 대리점은 제작사와 상품을 위탁판매하며 또한 외국상품을 배급한다. 고매상은 비디오대여점을 말한다.

국내 비디오시장은 크게 판매시장과 대여시장으로 구분되지만 현실적으로 중간 유통과정이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다. 전국 도매상 현황은 1991년말 현재 189개소로, 이중에서 대여업소가 300개 이상인 중대형 도매상은 42개로서 약 22%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29) 나머지 대부분 도매상은 영세업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비디오대여점은 3만 8천개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30) 이러한 유통구조가 유통과정 때문에 전체 비디오시장의 규모는 증가되어도 실제 관련된 사업체들의 이윤은 영세성 때문에 소규모에 그칠 수 밖에 없다.31)
한편, 정보구 1992년부터 외국인의 음반 비디오 제작업 참여를 허용함으로써32) 프로그램 판매회사로만 있던 메이저 기업들에게 직접 복제·제작 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주었다. 그리고 구내의 대기업들과 프로그램 공급과 판권계약을 맺고 있던 메이저 영화사들이 직접 배급의 형식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즉 CIC가 92년 7월 1일부터 국내 위탁판매사나 중소도매상을 거치지 않고 비디오대여점에 프로테이프를 직접 판매하기 시작했고33), 콜럼비아-트라이스타 또한 대우전자와 결별하고 92년 6월부터 직배에 들어갔다.34) 그 이후 월트 디즈니도 직배로 돌아섰고, 현재까지 비디오 직배를 하지 않는 메이저 여타사는 20세기 폭스와 워너 브라더스 뿐이다.35) 이러한 현황을 도표로 나타내면 <그림 IV-2>와 같다. 이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대부분의 메이저는 판매위탁의 형식으로 직배를 하고 있다(점선으로 표시된 회사들은 위탁판매를 담당할 뿐, 판권은 소유하고 있지 않다). 또한 정부의 저물가 정책으로 비디오테이프 대여료는 사실상 묶여있고, 공테이프 가격은 오히려 떨어져 가격인상요인이 없는데도 직배사들은 90년부터 매년 프로테이프 가격을 정기적으로 인상해왔다.39)

이와 같이 메이저 영화사들이 비디오산업에의 진출을 대기업과의 라이센스에서 직배로 바꾸면서, 가격인상까지 하게 된 이유는 비디오 프로그램이 가지는 독특한 경제적 성격에 있다고 할 것이다. 이를 살펴보면, 첫째, 비디오 프로그램은 생산에 있어 복제에 드는 비용만을 추가함으로써 판권의 소유자에게 높은 부가가치가 발생한다. 따라서 판권의 소유자는 판권거래만으로도 이윤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또한 한국에서 곧 실시될 예정인 케이블 TV나 위성방송 등의 뉴미디어가 도입될 경우, 판권을 통해 프로그램을 공급할 수 있으며, 이들 사업주체들과 직접적으로 거래함으로써 중간배급단계에서 발생하는 마진(margin)을 감소시키고 부수적인 수입의 극대화를 이룰 수 있다. 그러므로 한국의 비디오시장 규모의 지속적인 증가와 뉴미디어의 도입으로 인한 창구효과(window effect)가 커질수록 직배를 통한 거래방식이 강화될 것이다.
둘째, 메이저사들이 판권의 라이센스에서 직배로 전환하게 됨에 따라 국내의 대기업들과 중소제작사들은 프로그램의 공급에 있어 차질을 빚게 된다. 따라서 직배로 인해 메이저들은 시장에서의 판권거래가격을 인상시킬 뿐만 아니라, 비디오 대여점과의 거래에 있어서 우위를 차지하게 되여 이윤을 극대화 시키게 된다. 그러므로 직배사는 국내사정에 관계없이 가격인상을 단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격인상이 무제한적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다. 직배사가 비디오 대여점에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설정하면 비디오 대여점은 이를 최종 소비자에게 이를 전가하게 된다. 이 경우, 비디오 프로테이프에 대한 최종 수요가 감소될 뿐만 아니라 불법테이프의 유통과 국내 제작사에 의한 자체제작이 활성화될 가능성이 발생하게 됨에 따라 이윤을 극대화 시킬 수 없게 된다.37)
③ 비디오 프로그램의 수입이 국내업계에 미친 영향
가. 제작부문
1987년 이후 국내 비디오시장에 대기업이 본격적으로 개입함에 따라 중소규모의 비디오 프로덕션들은 대기업의 하청을 받아 OEM 공급계약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하게 되었다. 1992년말 집계에 따르면, 총 136편의 비디오 극영화가 제작되었는데, 이는 비디오 프로덕션의 40% 정도가 주로 국산 에로물을 제작한 것이고, 나머지는 대기업이나 외국 영화사들의 판권이나 하청을 받아 복제에만 주력한 것이다.38)
우리나라의 중소 비디오 프로덕션들은 대부분 미국의 직배사나 홍콩과 유럽 등지의 외국 영화사, 국내 대기업들과 판권계약이나 하청을 통해 제작을 담당하고 있는데, 이는 규모가 영세하기 때문에 자체 프로그램을 제작할 경제적인 여건이 없을 뿐만 아니라, 국내제작의 방화만으로는 소비자들의 수요를 감당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의 방화의 판권료는 억대에 이르기 때문에39), 이보다는 3천 달러 미만의 값싼 외화를 수입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 할 것이다. 또한 성인용 에로물의 경우 평균 제작비가 4천 5백만원에서 5천만원 사이에서 결정되므로40), 포르노에 가까운 질낮은 비디오영화가 범람하는 것이다.
한편, OEM 계약방식은 중소 비디오 프로덕션으로서는 안정적인 판매량을 보장받는다는 이점을 가지고 있다. 즉, 브랜드의 명성과 체계적으로 조직된 판매망이 있어 기본 수량은 판매할 수 있으며, 전문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41) 그러나 OEM이 심화되면서 중소 프로덕션이 담당하게 되는 몫은 자꾸 줄어들며, OEM 계약조건도 불리하게 체결되어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대기업 계열의 비디오사 역시 제작보다는 흥행성 높은 외하의 판권구입과 유통시장의 장악을 위해 경쟁하고 있다. 이는 대기업 계열 비디오사가 1992년 한해 동안 제작한 작품수는 12편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로서 명확히 알 수 있으며, 특히 SKC나 스타맥스의 경우 한편도 제작하지 않았다.
대우전자, SKC, 삼성물산 등의 대기업들은 안정적인 공급원 확보와 흥행성을 고려, 외국 비디오의 판권구입에 과다경쟁을 벌여 로열티의 인상을 부추겼다. 사실상 87년 이후 대기업들이 국내 비디오시장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됨에 따라 외화 한건당 적용되었던 로열티 상한액수였던 5천 달러는 무명무실해졌다. 1991년 대우전자의 경우, 총매출액(2백 20여억원)의 50%(1cs 1백여억원), SKC는 85억여원 중에서 45%(38여억원), 삼성물산은 74여억원 중에서 50%(37억원), 삼성전자의 별도법인인 스타맥스는 98여억원 중에서 57.8%(56여억원)을 미국 메이저사에 로열티로 지불했다(<표 IV-6> 참고). 특히 SKC나 삼성물산의 경우, 일반작품의 로열티 비율이 각각 31%, 26.2%에 그치고 있어 대조를 보이고 있다. 이는 타업종의 로열티 비율이 10% 이하인 것에 비해 상당히 높은 것으로 비디오 프로테이프 가격인상의 주요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며42), 결국 비디오테이프 대여료의 인상은 소비자들에게 경제적 부담으로 전가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91년 당시 미국 메이저사들이 직배 혹은 국내기업과의 합작을 통해 전체 프로그램의 55% 정도를 공급43)하고 있었음에 비해, 판매시장에서의 시장점유율은 2천여억원의 70%(1천 4백여억원) 이상을 장악했다.44)는 사실은 직배가 강화될 경우, 미국 메이저사들에 의한 비디오산업의 지배가 더욱 심화되리라는 것을 말해준다고 하겠다.

이와 같은 대기업들의 막대한 로열티의 지급과 함께, 외화수입시 일시에 50-100편씩을 무더기로 계약, 반입함으로써 중소 프로덕션사들의 물량확보를 어렵게 하는 등 입지를 더욱 약화시키고 있다. 따라서 대기업 및 직배사들의 시장점유율 확대와 과다경쟁으로 인해 앞으로 비디오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중소 프로덕션은 10개 미만이 될 것으로 보인다.45) 실제로 91년에는 6개 업체, 92년에는 27개의 업체가 도산한 것으로 알려졌다.46)
또한 이는 작년 한해동안 비디오 프로테이프와 대여현황을 살펴봄으로써 재확인할 수 있다. 즉, 대여순위 20위 안에서 16편이 미국 할리우드 제작의 영화들이고, 그 중에서 18편이 직배나 대기업에 의해 수입된 것들이며, 한국영화는 1편 뿐이다.(<표 IV-7>)

나. 유통부문
한편, 유통부문에 대해서 살펴보면, 그동안 미국 메이저사들의 비디오 프로테이프의 판매를 맡아오던 중소도매상들의 판매 마진은 15-17% 정도였다. 이는 한해동안의 금액으로 환산하면, 2백 10억-2백 28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그러나 메이저사들이 직배를 확대해감에 따라 유통망까지 장악, 자사제품의 무제한적인 공급으로 인해 판매부문에서의 점유율 또한 계속 증대해갈 전망이다.47) 또한 대기업 비디오사들도 유통마진을 고율로 책정, 영세 비디오 대여업자들과 소비자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SKC는 10.8-16.7%, 대우는 16.3%, 삼성 14.3-16.1%, 두산 13.3-15.4% 등 대기업 비디오사들이 기타 중소제작업자들의 평균 13.3% 보다 높게 책정하고 있다.48) 이는 미국 메이저사들이 라이센스에서 직배로 전환하게 되자 판권을 통한 이윤추구가 힘들어져, 대리점을 통한 지방의 위탁판매라는 새로운 직판 유통망을 형성하면서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현재 국내 비디오시장의 유통경로는 크게 3가지로 나뉘어진다. 이는 우일영상, 스타맥스 등 대기업들의 직판영업과 중소제작사들의 도매상을 통한 유통방식, SKC의 자사 대리점제도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러한 구도는 93년초에 형성되었는데, 92년까지는 일부제작사를 제외하고 제작사 --> 유통사 --> 도매상 --> 대여점을 거치는 유통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93년초 SKC가 자사대리점중 9개를 선정, 지역분할에 들어가면서 대기업들의 직판영업체제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90년의 제작사별 프로그램 출시를 살펴보면, 대기업과 중소 프로덕션의 비율이 30 대 70이었으나 92년에는 70 대 30으로 조정되었다. 앞에서도 보았지만 도매상의 유통마진율을 보면 중소 제작사의 제품이 대기업의 제품보다 높은 이익을 준다. 92년부터 대기업의 작품출시가 많아지면서 도매상들은 마진율의 저조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49)
이에 따라 전국이 약 3만 8천개로 추산되는 비디오대여점에의 물량공급을 담당해오던 중소도매상들이 부도로 쓰러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50) 월트디즈니의 유통을 맡고 있던 신한프로덕션이 부도로 인해 쓰러졌고, 92년 한해동안 서울의 7개 중견도매상이 부도를 냈으며, 부산의 3개 대형도매상이 쓰러지는 등 유통사들의 고사현상이 계속되고 있지만51), 근본적인 대책이 없이는 쉽게 돌파구를 찾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도매상들이 설 자리는 날로 좁아지고 있고, 그동안 도매상, 직판사 그리고 대여업자의 트라이앵글 체제로 운영되던 비디오 유통의 구조가 직판사와 대여업자의 이중구조로 전환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한달에 1-2편 출시하는 영세제작사들만이 도매상을 통한 유통망을 이용할 뿐, 규모가 큰 제작사들은 자사의 직판유통망을 이용함으로써 대기업의 입지가 더욱 확대되어가고 있다.52)
또한 비디오대여점의 덤핑경쟁으로 인해 소형 대여점의 몰락을 초래하고 있다. 이러한 덤핑은 대부분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주로 대여점이 밀집되어 있는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다. 처음에는 비디오 테이프를 1,000원에 대여하면서 경쟁이 불붙기 시작했는데, 현재 500원에 비디오테이프를 대여해주는 곳도 생겨나고 있다. 비디오테이프의 편당 출시가격이 19,800원에서 22,500원 수준이라고 볼 때, 500원의 대여료를 받는다면 45회를 대여해야 테이프 가격이 빠진다. 인건비를 포함해 이익에 이르려면 최소한 70-80회 정도 대여가 되어야 한다. 새롭게 출시되는 신작 비디오테이프의 회전기간이 1개월을 넘지 못하는 현실에서 500원의 대여료는 이익에 의문을 갖게 한다. 즉 과다경쟁으로 인해 대여점간에 서로 피해를 입고 있는 것이다. 덤핑경쟁은 대여점들의 출혈경쟁에 따른 저질 비디오문화의 확산과 불법비디오의 유통53)을 부채질할 가능성을 안고 있다. 또한 국내 비디오 대여점들간의 경쟁으로 국내진출을 노리는 외국 대형 유통사들에게 이용될 수도 있다. 미국회사들의 경우, 국내 대여점들의 덤핑에 착안해 편당 1달러선의 대여가격으로 국내진출을 노리고 있으며, 일본회사의 경우, 500원선에서 가격책정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54) 이는 아직 영세한 수준에 머물고 있는 국내 비디오 대여업계가 외국의 대형유통사들의 진출로 8천억원 이상에 달하고 있는 비디오시장을 크게 잠식당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④ 시장행위의 다변화
위에서는 비디오시장의 전반적인 변화 환경들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93년의 경우는 그동안 연간 1조원에 육박하는 방대한 시장규모로 급성장하였지만, 지난 88년이후 계속된 급속한 양적팽창이 주춤하고 국내외 여건변화에 따른 업계의 산업구조가 재정비되는 한해로 요약될 수 있다. 즉 외국직배사의 본격적인 국내 비디오엄계 등장과 기존 대여점 체제에서 직판체제로의 변화, 비디오 대여점간의 과다경쟁, 무리한 판권경쟁으로 인한 중소제작사의 몰락 등이 앞으로 다가올 비디오산업의 판도변화를 읽을 수 있게 한다.
93년에 가장 눈에 띄는 현상으로 직접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직접판매(sell-through)의 활성화를 들 수 있다.55) 셀쓰루의 판매방식은 주로 레코드점, 백화점, 편의점 등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 비디오산업의 흐름이 대여시장 위주로 급격히 팽창했으나 이제는 포화점에 이르게 되자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다는 의미에서 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국내 비디오시장의 구도가 '대여'에서 '판매'로 점차 판다고 바뀔 것이라는 분서고 나오고 있다.56)
이러한 셀쓰루의 판매방식을 통해 가장 성공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영화사는 월트디즈니이다. 월트디즈니는 다양한 만화영화를 보유한 특징을 살려, 만화영화는 대여와 셀쓰루를 병행하면서 주로 셀쓰루에 초점을 맞춘 마케팅 전략을 쓰고 있으며, 성인물은 우리나라의 시장상황에 적합한 대여에 의존하고 있다. 대여용으로 출시되는 작품들이 한번 출고된 권수에 커다란 증가가 없이 오히려 반품으로 인한 판매량이 줄어드는데 비해 셀쓰루를 통한 작품들은 꾸준한 판매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인어공주'의 경우, 92년 4월 셀쓰루를 시작한 이후 현재까지의 판매량이 10만장을 넘고 있으며, 11월에 출시된 '미녀와 야수'는 16만장에 육박하고 있다. 94년에 월트디즈니는 '알라딘', '정글북' 등을 포함하여 히트를 예고하는 만화영화를 15편 정도 셀쓰루할 계획으로 있다.57)
또한 CIC도 93년에 '오드리 햅번 콜렉션'을 선보이며, 셀쓰루 시장에 뛰어들어 소비자들로부터 상당한 호응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68)
이러한 움직임에 따라 다른 메이저사들도 추억의 영화를 중심으로 셀쓰루를 통한 판매방식을 채택할 것으로 보여, 메이저사들에 의한 시장지배는 더욱 심화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한편, 국내의 프로덕션들도 기획물의 제작과 셀쓰루를 통한 판로개척을 통해 그동안의 침체를 극복하고 새로운 도약을 모색하고 있다.
⑤ 비디오산업에 대한 정부의 정책과 평가
이상에서 한국 비디오산업의 현황과 미국 메이저 영화사들의 진출과정, 그리고 시장잠식의 정도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영화산업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들이 한국의 비디오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의 정책과 무관하지 않다. 기본적으로 86년의 한미통상협상, 87년의 영화법 개정을 통한 영화시장의 개방은 비디오시장의 개방도 포함하는 것이었다. 영화시장의 개방과정에서 살펴보았듯이, 미국이 통상법 301조를 발동하면서 내세운 요구사항 중에서 다섯번째 조항은 비디오시장의 개방에 관한 것이었다. 이러한 요구조항들이 협상을 통해 타결됨으로써 영화시장의 개방과 함께 비디오시장은 자연적으로 개방되었던 것이다. 메이저사들의 입장에서는 같은 영화 프로그램이 극장에서 상영되든, VCR을 통해 시청자에게 전달되든, 일단 수입개방만 이루어지면 배급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또한 당시 행정적인 면에서 비디오가 음반법에 적용을 받고 있었던 것도 미국 직배영화사의 영화시장 진출보다 비디오시장에의 진출이 훨씬 쉽게 이루어졌던 요인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국내에서의 합법적 비디오 프로그램 테이프는 1981년 비디오의 관련된 법인59)이 마련됨으로써 탄생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비디오 관련법은 건전한 비디오 문화의 육성을 위한 계기를 마련할 수 있는 수준이 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법적근거 없이 존재했던 기존의 500여개의 비디오 프로그램 제작사들은 대부분 영세하였으므로 비디오 관련법이 규정한 시설기준을 마련할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 이러한 시설기준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약 2억-2억 5천만원의 예산이 소요되는데, 이는 무엇보다도 카메라, U-Matic VCR 등 고가의 비디오 시설을 일본이나 미국으로부터 전량 수입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시설기준을 충족시킬 수 없는 영세 제작사들은 불법적인 사업을 계속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때의 비디오 관련법인 음반법은 1980년 이후 VCR의 판매가 가전 3사에 의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게 됨에 따라, VCR의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형식적으로 모양세를 갖춘 것에 불과하였다. 즉 이 당시 비디오 관련법은 소프트웨어 산업의 이해관계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드웨어 산업의 이해관계에 의해 마련된 것이라 볼 수 있다.60)
이러한 법제하에서 나타난 결과는 1988년까지도 불법비디오의 유통이 약 60%에 달했다는 것이다. 당시 불법비디오에 대한 단속은 매년 1억원의 예산을 들여 단속을 실시하였으나, 단속요원들이 현장에서 불법비디오를 적발하더라도 사법권이 없이 압류를 한다든가 구인할 수 없게 되어 있었을 뿐 아니라, 음반법의 처벌규정도 약해 큰 실효를 거두지 못하였다. 즉 당시의 음반법 제13조에 따르면 '음반이나 비디오를 불법으로 제작·배포·판매한 자는 2년이하의 징역, 300백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고 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들 범법자들이 적발되어도 대부분 20-30만원의 벌금을 내면 풀려나는 실정이었다.61)
이와 같은 불법비디오의 범람과 이에 대한 적절한 대책이 미비한 상황에서 미국의 메이저사들은 막강한 자본과 다양한 판매전략으로 한국시장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즉 메이저들은 한국 비디오시장의 무질서를 정리한다는 이유로 그들의 기반을 닦을 수 있었으며, 한국시장에의 진입이후에도 영세한 한국의 업자들과의 경쟁에서 쉽게 우의를 차지할 수 있었다.
이러한 문제점으로 인해 정부는 1991년 2월 7일에 사전심의 법제화와 처벌규정 강화를 골자로 한 '음반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켰다. 이법에서는 이전의 음반법을 가지고 있던 허점을 보완하여, 모든 음반·비디오들의 불법적인 제작·배포·판매 등에 대해서 3년 이하의 징역, 2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처하는 등 규제를 강화시켰고, 음반 및 비디오의 관련법 허가처인 문화부에 등록 및 취소권을 부여하고, 관계공무원에게는 사정권을 부여하여 문화부가 본격적으로 음반 및 비디오물의 제작, 유통에 관한 행정권을 행사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개정된 '음반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은 사전심의의 강화로 업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즉 사전심의제도는 퇴폐, 폭력, 음란 등의 비디오에 대해서 사전심의를 강화하여 비디오 문화의 건전한 육성을 도모한다는 취지를 가지고 있으나, 이는 대중의 규제여론을 이용, 비디오에 관한 무당한 심의를 합리화하겠다는 의도를 포함하고 있으며 강제심의를 더욱 공고히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실상 비디오물에 대한 사전심의는 영화법, 공연법의 실의기준을 원용함에 따라 공윤의 자의적 확대해석이 가능해 규제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으며, 중소 프로덕션의 비디오 제작이 침체에 빠져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이들의 사기를 더욱 축소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62)
또한 개정된 법은 '음반 및 비디오 수입업에 대해 92년 1월부터 외국인 및 외국법인에 대한 등록제한을 철폐한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이는 외국인의 음반·비디오 제작업 참여까지도 포함하고 있어 판매회사로만 머물러 있던 외국 비디오사들에게 직접 복제·제작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이에 대해서 문화부는 89년 5월의 한미통상협정에 따른 후속조치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이로 인해 국내의 영세한 중소 비디오 프로덕션들은 할리우드 영화사들의 제작하청업체나 자회사로 전락할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고 할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한국정부의 비디오에 관한 정책과 법률의 시행은 어떤 일관된 계획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당시의 상황에 맞춰 임시방편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요약할 수 있다. 비디오산업의 성립 초기부터 정부는 비디오 프로그램 제작업을 '중소기업 고유업종'으로 지정하여 대기업의 참여를 배제시켰으나, 미국 메이저사의 진입 등 시장환경이 악화되자 대기업의 별도법인이나 자회사가 우회적으로 시장을 지배하는 상황을 방치하였다. 물론 대기업들의 참여에 따라 비디오시장이 확대되고 유통질서가 개선되는 등의 긍정적인 면도 없지 않다. 이들 대기업들은 처음에는 하드웨어의 판매를 위해 비디오의 수입 및 유통에 개입하였으나, 현재는 실질적으로 비디오시장을 장악하고 있으며, 조만간 케이블 TV나 위성방송의 도입에 따라 프로그램 공급에 있어 기득권을 보장받기 위한 포석도 하고 있다. 오히려 정부의 정책보다 대기업들의 사업적인 안목에 의해서 양상산업의 방향성이 결정된다고 하겠다.
또한 비디오가 음반과 같은 맥락에서 법적인 조정을 받게 됨으로써, 향후 전개될 영상시장의 복합화나 멀티미디어 체제의 구축 등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힘든 면을 내포하고 있다. 즉 영화를 영상의 집합체로 보듯이 텔레비전이나 비디오를 하드웨어의 차원에서는 달리 해석할 지라도 소프트웨어의 측면에서는 '영상매체'로 보아야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할 것이다.
이상에서 한국의 비디오산업에 미국 할리우드의 메이저사들이 진출하는 과정과 이로 인한 구조의 변화에 관해 살펴보았다. 다음 장에서는 미국의 영상 프로그램이 한국에서 지배적으로 유통됨으로 인한 경제적 효과와 함께 문화적 합의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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